[영화이야기] 82년생 김지영

[영화이야기] 82년생 김지영

 

 

 

 

 

개봉도 하기 전에 '평점 테러'가 시작되었고, 인증샷이나 해시태그만 올려도 악플이 몰려드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오히려 저는 '전투적 페미니즘 영화는커녕 너무 밋밋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는 재미나 극적 효과를 위한 과장된 차별은 전혀 없었습니다.
게다가 김지영 씨 정도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생각도 했지요.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남편과 든든한 친정 식구가 곁에 있고, 시어머니도 속을 긁긴 해도 아주 경우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며 시누이도 갑자기 이상해진 김지영 씨를 걱정해 주었으니까요.
그냥 이 정도면 특별한 상황에 놓인 소수의 여성이 겪는 차별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그냥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모래주머니' 같았습니다.
그래서 영화관의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울었나 봅니다. 바로 '내 이야기'라는 생각 때문에요.

저는 이제 스무 살이 된 딸이랑 영화를 봤습니다.
저 역시 다른 여성들에 비해 혜택받으며 친정어머니와 가족들, 이웃들의 도움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아이를 키우며 일했지만, 어린이집에 제일 일찍 등원하고 제일 늦게 하원 했던 어린 딸들, 발 동동 구르던 그 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던 건 여전히 굳게 서 있는 벽, '아이냐 일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사회가 내 딸 앞에도 놓여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딸에게 영화를 보고 나서 어땠냐고 물었더니 '슬프다'고 했습니다. 저는 미안했습니다.

모든 김지영들을 응원합니다.
혼자 밤길을 걸어도 무섭지 않고, 택시를 타도 겁나지 않고, 화장실 가서 주위를 살피지 않아도 되는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로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모래주머니'를 벗고 당당히 그 길을 걸어가라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한다면 더디더라도 그날은 올 것입니다.
2012년 김지영쯤은 '이 영화 너무 현실감 떨어지는 거 아냐?'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이야기] <82년생 김지영>, 이제는 풀어야 하는 매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