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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영화 이야기] 미안해요, 리키

by 움이야기 2020. 2. 12.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이어 후속작 <미안해요, 리키>에서도 뉴캐슬을 배경 도시로 선택했습니다.
정식 이름은 뉴캐슬 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 잉글랜드 북부의 타인강이 흐르는 도시인데요. 제가 유학했던 더럼(Durham) 근처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더럼에 오갈 때도 뉴캐슬 공항을 이용하고요. 가끔 영화 보러 쇼핑 하러 중국 마켓에 배추 사러 나오던 추억의 장소지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싱글맘 케이티가 두 자녀를 데리고 런던에서 뉴캐슬까지 온 이유로 '집값이 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원래 뉴캐슬은 항구 도시로 근처 더럼 카운티 일대에서 호황을 누렸던 광산에서 채취한 석탄을 런던 등 대도시로 수송했던 영국 산업혁명의 전초기지였습니다. 하지만, 마거릿 대처 시절 현대화를 이유로 광산을 폐쇄하면서 노동자 조합이 격렬하게 맞섰던 역사가 있지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 역시 그 시절, 이 지역의 이야기고요. 매해 여름 더럼에서는 'Miners' Gala'라고 해서 노동자들의 대규모 행진과 축제가 열립니다.

 

 

추억에 젖다 보니 배경 설명이 길었네요.

<미안해요, 리키>는 택배 기사 리키의 이야기입니다.
실직 후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다가 '일 한 만큼 벌 수 있다'라는 이야기에 솔깃하여 택배 일을 시작합니다.
분명 택배회사에서 물건을 받아 택배회사의 이름으로 배송하는데 리키는 '자영업자'입니다.
돌봄 노동을 하는 아내의 작은 차를 팔아 택배용 밴을 구입하고 비싼 개인정보단말기도 빌려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사업을 하는 사장님처럼 휴일이나 일하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은 없습니다.
정해진 이동 경로를 벗어나면 2분 만에 경고음이 울리고 화장실 갈 틈이 없어 배달 첫날 장난인 줄 알고 받아 뒀던 생수통을 이용해야 했으니까요.
가족을 위해 이를 악물고 일했지만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도, 필요할 때 함께 있어 줄 수도 없었습니다.
급기야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어야 했습니다.

'총알배송', '새벽배송'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택배 기사님들의 영혼까지 갈아 넣는 땀과 수고를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노동자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받지 못하면서 자영업자의 위험만 감수하는 '플랫폼 노동'의 불합리함을 지적하지 못했고요.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건강하고 안전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