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복잡한 거리 한가운데 자동차가 멈춰 섭니다. 운전자는 눈앞이 온통 하얗다고, 앞이 안 보인다고 소리칩니다.
안과를 찾았지만, 의사는 눈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며, 난생처음 보는 희귀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사를 비롯하여 눈이 먼 남자와 접촉한 사람들 모두에게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리는 '전염병'이 어느 날 갑자기 평화롭던 한 도시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강제로 격리됩니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로, 눈이 먼 채 강제 격리된 사람들이 겪는 혼란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로 그리고 있습니다. 절망과 혼돈, 지옥 같은 극단의 상황에서 날 것 그대로 올라오는 인간의 본능, 야만과 폭력은 잔인하고 끔찍했습니다.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요. 눈먼자들과 함께하는 유일한 눈 뜬 자, 의사 부인은 혼돈의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서로를 향한 연민과 사랑, 협동과 연대, 과감하고 단호한 판단이 나락에 빠진 이들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제게 여성주의 소설(영화)로도 읽혔습니다. 여성들에 대한 성적 학대, 이에 대한 응징, 세상을 구원하는 여성적 리더십... 비 오는 날, 테라스에서 함께 몸을 씻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 여성들의 모습은 신성한 의식(ritual)처럼 장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소설을 먼저 읽고 난 후 본 영화는 상상했던 장면들과 배치되기도 하고 비슷하기도 해서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무덥고 지루한 여름, 좀 오싹하기는 하지만 몰입해 읽는 재미와 함께 많은 생각 거리를 던져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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