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SNS가 뜨거웠습니다. 래퍼들의 경연인 <쇼미더머니>에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송민호의 자작 랩 중에서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가 문제가 되면서요.
"산부인과를 '다리나 벌리는 곳'으로 비하했다", "생명 탄생의 존엄한 의료적 과정을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사용했다"는 비판과 분노가 거센 가운데 힙합의 자유정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논란을 보며 든 첫번째 생각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변한 게 없는가'하는 자괴감이었습니다. 20대 때 산부인과 이용 당사자로서, 30대 이후 여성건강을 살피는 의료인으로서 많은 문제 제기를 했지만, 산부인과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철옹성같이 단단하기만 합니다.
산부인과의 아이러니는 이곳이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면서도 여성들이 가장 꺼리는 장소라는 데 있습니다.
2012년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여성들이 생각하는 산부인과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요,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고싶지 않은 곳, 굴욕, 낙태, 임신, 출산, 다리 벌리는 의자, 두려움, 민망함, 부끄러움, 불편함, 수치감···
- <혹시 산부인과 가봤어?> 중에서
산부인과는 '임신과 출산'만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편협된 인식, 미혼 여성의 산부인과 진료는 성병이나 낙태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오해는 여성의 산부인과 진료를 꺼리게 합니다. 또한, 겨우 용기를 내 산부인과를 찾더라도 '다리 벌리는 차가운 의자'로 대표되는 안 좋은 경험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산부인과는 가급적 안 가야할 곳으로 여기며 평생도록 이곳을 멀리합니다.
문제는 기분 나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초경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레 여성의 건강을 체크하고 상담받을 수 있는 편안한 장소여야 할 산부인과가 여성의 기피 공간이 되면서 피해를 받는 당사자는 바로 여성입니다. 초기에 발견하면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을 끙끙 앓다가 큰 병으로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부인과(産婦人科). 출산한 부인만 가야할 곳 같은 뉘앙스를 지닌 이 이름을 '여성의학과'로 바꾸자는 논의는 여전히 결론을 못내고 답보 상태입니다. 환자가 아니라 의사의 편의를 위한 산부인과 의자의 개조는 영 어려운걸까요? (영국에서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는데 이 의자를 사용하지 않아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환자를 배려한 세심한 질문과 치료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여성들을 훨씬 편하게 할 텐데요.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나이가 많건 적건, 성소수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해 편하게 상담하고 치료받을 수 있을 때 여성은 훨씬 건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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