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움 다이어리

[책이야기] 여자전: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by 움이야기 2019. 6. 14.

 


"대체로 역사 속 이름 없는 이들은 여성이었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위인전이나 역사책 속 주인공은 대개가 남성입니다.
기껏해야 여성은 누구의 아내이거나 어머니일 뿐이지요. 남성 주인공의 치적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나 희생과 헌신의 보조자일 뿐이고요.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그들만의 이야기(His Story)'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반쪽짜리 역사를 넘어서기 위해 '그녀들의 이야기(Her Story)'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역사는 앞장선 소수의 리더 몇몇이 만들 수도 없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과 휴전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순간을 온몸으로 겪어온 여자들이 있습니다.
지리산 빨치산으로 살면서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살아남은, 한국 전쟁 때 남편이 월북하고 홀로 종갓집 종부로 살다가 반세기 만에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남편을 만난, 돈 벌러 기차에 올라탔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가난 때문에 만주로 가 중국 군대에 입대했다가 중공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서슬 퍼런 시절 권력과 싸우며 문화판을 벌였던, 자유로운 영혼과 춤으로 혁명을 일으킨, 한 달 만에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고 그를 그리며 그 남자의 아이와 평생을 살아온, 일곱 여자의 이야기가 <여자전>에 담겨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할머니, 어머니,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굽이굽이 역사의 순간을 관통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그 자체가 흥미진진한 서사지만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은 작가 김서령의 힘입니다.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마음으로 듣는, 그래서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훌륭한 인터뷰어이자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처음으로 '글에서 향기가 난다'고 느꼈던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이거든요(아깝게 일찍 세상을 떠난 김서령의 마지막 작품,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강력 추천입니다).

오랜만에 어머니, 할머니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한 여자의 세상이 온전히 담겨 있는 역사의 소중한 한 조각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