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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건강한 피임을 위한 다양한 논의 필요

by 움이야기 2013. 8. 9.

올 여름 한국은 유난히 비도 많이 오고 무더운 날씨라는 소식을 듣고있습니다. 매번 영국 날씨 안좋다 불평하던 저에게 날씨자랑을 할 수 있는 전세역전의 기회가 온거지요. 외신에는 영국의 폭염이 주요기사로 전해졌다하고, 과장 많은 영국 사람들은 십년만의 더위라고 ‘boiling’이라며 난리지만 저는 계속되는 햇볕, 그늘에 들어가면 바로 시원해지는 건조한 날씨, 선선한 바람이 마냥 좋기만 합니다. 이제는 하늘도 높아지고 마치 한국의 가을느낌이 나는 영국의 팔월입니다.

 

무더운 여름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휴가지요. 일찍 휴가를 다녀오신 분들은 충전한 에너지로 또 한해를 보내고, 휴가를 기다리시는 분들은 그 설레임으로 지루한 무더위를 견디고요. 영국인들에게도 여름휴가는 한해살이의 아주 중요한 이벤트입니다. 주요 관광지들의 숙소는 일찌감치 예약이 끝나고 도로에서는 캠핑을 떠나는 카라반들을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작은 도시 더럼도 여름여행을 온 관광객들로 어느때보다 분주합니다. 저는 논문을 마무리하는 기간이라 긴 여행은 엄두도 못내고, 틈틈히 스코틀랜드와 영국 요크셔 지방을 둘러보는 짧은 여행을 계획 중이랍니다.

 

‘바캉스 베이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여름 휴가철 피임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고, 피임약 기사 또는 광고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는 ‘센스있는 남자친구라면 이번 여름 여자 친구를 위해 피임약을 미리 챙기라’는 소셜마케팅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피임약’이 과연 피임의 금과옥조일까요.


피임약이 여성건강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최근 기사검색에서도 잠시 동안 복용하는 호르몬의 경우 생식기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기사(<피임약 불임 걱정? 피임약의 오해와 진실>)와 자궁근종에 영향을 미치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기사 (<먹는 피임약, 자궁근종에 영향>)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피임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으로서는 피임약이 여성건강을 위협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만큼이나 피임약이 안전하다는 증거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피임약 복용을 독려할 것이 아니라 콘돔이나 주기법 등 다른 안전한 피임법에 대한 적절한 안내도 병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 조사에 의하면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 여성들은 피임약을 사용한 피임법을 꺼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단지 여성들의 피임약에 대한 오해, 이해부족으로 치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최근에 재미있는 논문 한편 ('In accordance with nature: What Japanese women mean by being in control')을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피임약 사용이 저조하고, 피임약의 합법화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구로부터 일본 여성들의 수동성, 여성단체의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과연 일본 여성들은 왜 피임약 사용을 꺼려하는지, 서구의 시선이 과연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사자 여성들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연구에서 일본여성들은 화학물질을 몸 안으로 넣어 자연적인 리듬을 깨뜨리는 피임약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외부화학물질에 의한 내 몸의 월경주기 조절이 오히려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재생산과 피임의 책임이 남녀 모두에게 있는데 여성의 피임약 복용이 일상화된다면 오히려 남성의 책임이 소홀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었습니다. ‘피임약을 통해 내 몸을 스스로 통제하는 여성’, ‘이를 벗어난 여성의 수동성’은 단지 서구의 시선이었을 뿐이었고 오히려 일본여성들은 약물의 통제 대신 다른 피임방법을 통해 스스로의 몸에 대한 권리를 지키고 피임의 책임을 남성과 함께 나누고자하는 또 다른 주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에서 피임, 피임약을 바라보는 당사자들의 생각은 어떠할까요. 

 

건강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단지 의학적 지식만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절대적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고 이는 사회, 문화적 영향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피임도 그 중 하나입니다. 계몽적인 태도로 여성에게 피임약 복용을 독려하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건강하고 효율적이고 주체적일 수 있는 피임법은 무엇인지, 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나누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