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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예방의학을 중시하는 영국의 의료제도

by 움이야기 2013. 9. 3.

영국에서 생활하면서 제 관심사 중 하나는 영국의 의료제도를 경험하고 살펴보는 일입니다. 영국의 의료제도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는 국민의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의료의 대명사이면서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했을 정도로 영국인들의 자부심이 높기도 합니다. 의료도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자의 선택이 중시되는 미국식 의료제도의 대척점에 서있는 영국의 의료제도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고, 그만큼 '긴 대기시간' 등 여러 소문이 무성하기도 합니다. 


의사, 간호사, 약사, 사회복지사 등 약 130만여명이 일하고 있는 NHS는 단일조직으로는 영국최대의 고용주라고 할만큼 큰 조직입니다. NHS 병원에서 태어나 시기에 맞춰 예방접종을 하고 지역의 주치의인 GP와 건강상담을 하는 영국인들에게 NHS는 가장 친근한 이웃이기도 하지요. 영국의 의료제도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질병치료'보다는 '예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을 병원에 오게해 수익을 올릴까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병원에 덜 오게하고 스스로 건강관리를 하게할까에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듯도 하구요. 


어제 BBC에는 두가지 백신에 대한 기사가 동시에 실렸습니다. 첫번째는 70-79세 노인인구를 대상으로 대상포진 백신을 주사할 예정이라는 기사입니다 ('Shingles jab campaign for people in their 70s'). 또 다른 기사 ('Nasal spray flu vaccine for all children rolled out in Wales')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스프레이형 독감백신을 실시할거라는 기사인데 관련기사에서는 이 백신이 백신을 맞은 어린이뿐 아니라 주변 가족들에게 전염시키는 것을 방지하는 '집단면역'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홍역, 풍진 등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해야할 시기가 되면 등록되어 있는 NHS 클리닉에서 직접 부모에게 연락을 해서 잊지않고 접종을 하도록 합니다. 또한 만 12세가 되면 학교 간호사의 관리아래 자궁경부암 백신이 무료로 접종됩니다. 물론, 백신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백신에 대해서는 비용부담없이 국가관리아래 적절한 시기에 접종을 하는 것이 NHS 예방의학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자중심의학 (Patient-centred medicine)'을 중시하면서 NHS에서는 의사와 환자의 상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눈에 띄는 연구로는 의사의 상담형태과 환자의 재진율에 관한 연구가 있습니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은 증상이 얼마나 심한지와 관련있기보다는 그와 관련된 환자의 불안, 혹시 큰 병이 아닐까 하는 염려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연구결과는 밝히고 있고, 따라서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증상과 관련된 환자의 염려를 인지하고 이를 해소시켜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때 환자의 진료에 대한 만족을 높이고 재진율을 낮출 수 있다고 연구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NHS에서는 소득불균형에 따른 건강불균형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무상의료로 평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득에 따른 영양의 차이, 주거환경의 차이, 근무환경의 차이는 건강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소하려는 방안으로 잉글랜드 북부 한 도시에서 'Welfare right advice (복지권 상담)'이라는 프로젝트가 이루어졌습니다. 주민들의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GP 클리닉에서 저소득층 주민들이 놓치기 쉬운 복지혜택을 꼼꼼히 받을 수 있도록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그 결과 일인당 평균 2,379 파운드 (약 400만원)의 혜택을 받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영국의 의료제도들을 보면서 여러 상상을 해봅니다. 지역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평생주치의가 있고, 몸이 아프거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있을 때, 또는 마음이 아플 때도 병원비 걱정없이 상담하고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병원이 단지 의료기관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커뮤니티 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을 합니다. 


10월부터는 의대 학생들을 위한 수업인 'Medicine in Community'에서 그룹토론을 도와주는 tutor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지식에 앞서 질병과 사회의 관계를 먼저 배우는 예비의료인들의 수업을 엿볼 수 있어 영국의 의학교육과 제도를 알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진출처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