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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월경, 여성에게 꼭 필요한가

by 움이야기 2012. 10. 16.

월경, 여성에게 꼭 필요한가



지난번에 잠깐 언급했지만 임상을 하면서 '어떠한 기전으로(How)' 월경을 하느냐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던 저에게 '왜(Why)'  월경을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은 참 흥미로왔습니다.


월경에 대한 첫번째 진화론적 관점은 Profet이 주장한 월경의 병균(pathogen) 제거작용입니다. 주로 정자에 의해 운반되는 박테리아들을 월경을 통해 제거하면서 자궁을 보호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주장은 이후 Strassmann에 의해 반박됩니다. 그는 월경을 하는 이유는 병균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발달한 자궁내막을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는 월경을 통해 내보내고 다시 다음 주기를 시작하는 것이 에너지관점에서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어쨌든 두 주장 모두 월경이 일정정도 '적응(adaptive)'의 기전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월경은 '적응'이 아니라 단지 임신을 위해 준비된 내막이 탈락되는 부산물일 뿐이라 주장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한달에 한번, 28일에 한번씩 하는 월경이 현대여성들에게는 '정상'으로 여겨지지만 이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과거에 피임을 하지 않던 시절에는 임신과 출산, 수유, 그리고 임신이 이어지면서 월경은 어쩌다 하는 행사일 뿐이었지요. 그러나 피임을 하고 적은 출산과 짧은, 혹은 결여된 모유수유기간을 갖게되면서 여성들은 잦은 월경을 하고 그 부작용의 하나로 자궁암, 유방암과 같은 에스트로겐 의존성 질환이 늘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월경을 인위적으로 멈추는 것이 효율적일까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Menstrual suppressing oral contraceptives (MSOCs)'는 피임약 중에서도 월경을 하지않도록 용량이 조절된 호르몬제입니다. 

불편하고 귀찮은 월경을 안하게하고, 동시에 월경을 자주 안하던 과거로 돌아가 현대의 여성질병을 예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선전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MSOCs는 월경을 억제하기는 하지만 과거의 '임신', '수유'로 월경을 억제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기전으로 작동합니다. 임신중에는 에스트로겐이 임신전보다 100배 가량 증가하고, 수유기간에는 에스트로겐 분비가 매우 적은데 MSOCs는 지속적으로 높은 프로게스테론, 낮은 에스트로겐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약물 복용중에 임신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혹 임신이 되는 경우 태아 형성의 가장 중요한 기간을 임신인지 모르고 지나가면서 여러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와함께 여성건강의 지표가 되는 월경을 거르면서 월경변화로 알 수 있는 건강상태를 매달 체크할 수 없다는 것도 월경억제의 큰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피임약이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아직은 없지만, 또한 안정성을 증명하는 장기 연구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주사제로 쓰이는 피임약인 depo-provera나 폐경여성의 호르몬요법이 쉽게 권유되다가 한참 후에야 부작용들이 밝혀진 예를 본다면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건강을 담보잡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피임약의 사용에 대해서는 또한 다양한 문화적 맥락이 존재합니다. 


1988년 미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56%의 여성이 이러한 월경억제제의 사용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나타내었다고 하며 지금도 여전히 서구 많은 나라에서는 월경을 억제하거나 유도하는 피임약이 피임의 주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여러나라에서는 피임약을 이용한 피임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1997년 일본에서 진행된 인류학적 연구는 매우 흥미로왔습니다. (<In accordance with nature: what japanese women mean by being in control>)

피임을 목적으로 한 피임약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일본에 대해 서구의 학자들은 '일본 여성이 수동성'을 지적하고 있지만, 오히려 일본여성들은 피임약의 사용으로 여성의 몸이 조절 당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며, 피임은 남녀모두의 책임인데 피임약을 사용함으로써 여성 혼자 피임의 책임을 져야하는 위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외부의 물질, 자연스럽지 않은 개입을 경계하는 태도을 보였는데 한국의 상황과 다소 비슷한 경향이라 생각됩니다. 


피임약에 대한 저의 부정적 견해도 어쩌면 이런 문화적 맥락, 한의사로서의 정체성에 갖혀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월경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진화적 가설과 증거, 최신의 의학정보들과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여성건강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도록 돕는 일, 그게 제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