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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스파이더는 누구일까

by 움이야기 2012. 10. 19.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밥먹고, 설거지하고, 하루에 딱 이 세 가지만 하는 거 같은데도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수업을 위해 미리 읽어야하는 Reading list는 잔뜩이고, 의학관련 저널은 그래도 괜찮은데 인류학은 아직 제게 새로운 분야이고 용어도 낯설어 자료를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다음주에 내야하는 숙제 하나는 고작 A4 두 장짜리 글인데도 쓰는데 두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습니다.

수업시간에 하는 농담을 못알아듣고 뻘쭘하기도 하고 남의 말로 공부하는게 쉽지않다는걸 뼈저리게 느끼지만 그래도 건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는 재미가 있습니다.


오늘 <Public Health> 시간을 준비하며 읽은 논문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Moving Canadian governmental policies beyond a focus on individual lifestyle: some insights from complexity and critical theories' 라는 긴 제목의 논문은 최근 사회적 질병으로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는 비만예방과 치료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줍니다.


캐나다의 비만예방정책은 개인의 생활습관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것의 문제는 비만을 유발하는 보다 넓은 요인, 사회적 환경을 놓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급식에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것이 학교울타리를 벗어나서는 효과가 떨어지며, 슈퍼마켓에서 과일과 야채를 많이 구입하도록 배치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음식을 살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값싼 정크푸드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한계이지요. 개인의 행동을 바꾸는 정책대신 스웨덴에서는 모두를 위한 건강한 환경을 만들고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보건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15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한 비만율 조사에서 캐나다는 11번째로 비만율이 높았지만 스웨덴은 22위로 현저히 낮았습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캐나다 보건당국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을 지속하는 원인으로 몇가지가 제시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 입니다. 정부의 여러 부서사이에도 힘의 불균형이 있고 시장경제와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관점이 우선시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비만의 사회적 비용과 부담은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critical point'에 도달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증가하면서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pidemiology and the web of causation: Has anyone seen the spider?'라는 논문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다양한 인자들의 복합작용으로 보는 연구경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사회, 경제, 문화, 환경적 요인 등 질병을 유발하는 여러인자들이 마치 거미줄(web)처럼 얽혀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그 그물을 만든 거미(spider)는 누구일까요? 그것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건강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되지 않을까요?


세미나를 하면서 계속 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난임여성'들이었습니다.

'건강한 임신을 위해서는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들을 저 역시 강조했습니다.

이는 어찌보면 약물로, 테크놀로지로 임신을 유도하는 생의학적인 처치에서는 한 발 나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난임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부작용을 유발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았습니다. 

임신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 경쟁, 스트레스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아닐런지요. 임신을 하고 싶어도 너무 바빠 임신을 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을 그대로 둔채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이라는 오래된 영화가 떠오르네요. 많은 생각이 오고간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