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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곁'이 되는 진료실

by 움이야기 2014. 10. 7.

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방법론중 하나가 바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말'을 수집하고 이를 종합, 분석하여 연구결과를 도출합니다. 인터뷰를 할 때 주의할 점은 연구자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질문보다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하는 입보다는 들어주는 귀가 더욱 중요합니다. 눈을 맞추고 이야기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듣게되면 사람들은 경계를 풀고 마음 속 깊숙히 있는 말들까지 꺼내놓게 되고 이는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날때의 언어는 조금 다릅니다. 환자들이 전하는 몸의 증상들을 그때그때 종합, 분석, 요약하고 필요한 보충 질문들을 하면서 진단과 치료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가끔은 말이 너무 옆으로 새지 않도록 정리하면서 방향성을 갖고 대화를 이끌어가야할 때도 있습니다.

 

인류학 연구를 할 때에는 인터뷰 중간중간 자꾸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요약, 정리하려는 한의사로서의 직업병(?) 때문에 곤란을 겪곤했는데, 진료실에서 환자를 볼 때는 가끔 환자분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옆길로 새기도 합니다. 진료시간이 좀 길어지고 대기하시는 다른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래도 저는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를 통해 삶을 나누고, 증상뿐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효과적인 치료와 치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자 엄기호 선생님은 최근 책 <단속사회>에서 '곁을 주는 사람'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곁을 주는 사람이란 '말'을 듣는 사람, 심지어는 '말이 되지 못하는 말'을 듣는 사람으로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실제적 조언', 즉 '참조점(reference)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난임으로, 습관성유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에게는 이런 '곁'을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지식과 정보는 책과 인터넷, 병원 등에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넘쳐나지만 임신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느끼는 불안감, 외로움, 스트레스는 쉽게 드러내기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나누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많은 연구에서 지지집단(support group)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난임/습관성유산 여성분들에게도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가 많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 역시 진료실에서 간접적으로 참조점(reference)를 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15년차가 된 진료실에서의 임상경험, 그동안 만난 수많은 난임/습관성유산 환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은 엄마가 된 이야기들은 절망과 불안 속에 있는 많은 분들에게 희망의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여러분 스스로가 희망의 참조점(reference)이 될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http://mogly71.cafe24.com/infertility/bbs/list.asp?fk_idx=6)를 통해 함께 경험을 나눠주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서로의 '곁'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서로를 지지하고 희망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조금씩 쓸쓸해지는 가을이지만 서로의 '곁'이 되며 든든하고 따뜻한 시간들 보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