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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책이야기] 페르세폴리스

by 움이야기 2014. 10. 24.

영국에 있을 때 많이 만난 친구들이 아랍 친구들입니다. 이란, 이라크, 카타르, 요르단 등에서 온 친구들은 유학생이거나 남편을 따라온 유학생의 가족이었지요. 이슬람의 종교적 전통을 지키며 베일을 쓴 친구들도 있었고, '이곳에서만이라도 자유롭게'하며 베일 없이 다니는 용감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만나면 두번씩 꼭 안아주는 아랍식 인사를 하는 따뜻한 마음의 그녀들과는 금방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중동에서 들려오는 불안한 국제정세, 전쟁, 테러의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안해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함께 안타까워하면서요.

 

<페르세폴리스>는 이슬람 혁명기와 이란-이라크 전쟁시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이란여성 마르잔 사트라피가 자신의 성장이야기를 만화로 담은 책입니다.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란이 어떻게 폐쇄적이고 통제적인 이슬람 국가로 바뀌어 갔는지,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얼마나 황폐화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여성과 어린이가 겪는 고통들을 소녀의 시선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진지한 만화만은 아닙니다. 그래픽을 전공한 작가의 흑백만화는 깔끔하고 인상적입니다. 통제된 사회에서도 사춘기 소녀는 암시장에서 유행하는 청춘의 문화를 만나며 숨통을 틔우고 비밀모임을 통해 저항을 분출합니다. 자유를 찾아 비엔나로 이주한 소녀는 아웃사이더로 성장의 아픔을 겪으며 방황하지만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돌아옵니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이란, 이슬람 사회, 특히 여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영국에서 만난 이란 친구 엘리는 의료사회학을 공부하며 이란의 갱년기여성의 경험을 여성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영국에 있었을 때도 이란과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여성의 몸,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요. 엘리에게 <페르세폴리스>에 대한 내부자의 관점을 물었습니다. 혹시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이 일방적인 서양의 시선이 아닌지에 대한 노파심이 들기도 해서요. 엘리는 단호하게 이 책의 초점은 서양/동양의 관점차이보다는 '인권'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최근 작가가 뉴욕 도서관에서 진행한 인터뷰 링크를 알려주었습니다 (http://www.nypl.org/events/programs/2014/10/18/marjane-satrapi).  

 

영국 의과대학 수업에 참여했을 때 인상깊었던 것중 하나가 '문화에 대한 이해 (Cultural awareness)'를 강조하며 다양한 참여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사는 영국에서 의사가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환자를 만날 기회가 매우 많고, 건강관리나 질병치료에 미치는 문화적 요인을 이해하는 것이 치료자에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한의원에도 많지는 않지만 가끔 외국인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러 오실때가 있습니다. 이슬람 여성의 치료에서는 늘 동반자로 오시는 배우자에게 설명하는게 중요하고, 치료시의 노출문제에 각별히 신경써드리는게 필요하며, 라마단과 같은 특별한 금식기간을 한약복용시 고려해야 했습니다.   

 

<페르세폴리스>는 짧은 두권의 만화로 멀게만 느껴지던 이슬람, 특히 이란의 현대사와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고 유익한 만화책입니다. 가을에 가볍게,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책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진료실에서 제게 살짝 말씀하시면 대여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