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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저출산대책에 싱글세? '살아보니 좋은 사회'가 해답

by 움이야기 2014. 11. 12.

한국의 저출산율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입니다. '하나만 낳아 잘 키워보자'던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며 여러 '당근과 채찍'의 저출산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꿈쩍하지 않고 있는 낮은 출산율은 여전히 저출산의 원인진단이 헛다리짚기라고 조롱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어제 저녁 트위터 타임라인에서는 '싱글세'논란으로 시끌시끌했습니다. 저출산 대책 논의과정에서 복지부 고위관계자가 OECD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합계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는 미혼남녀들에게 소위 '싱글세'라고 하는 세금부과를 검토할 수 밖에 없다는 발언을 한 이후입니다 (<싱글세라도 매겨야 하나... 출산율 10년째 제자리>).

 

우석훈의 <솔로계급의 경제학>에서도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율은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지않아서라기보다는 결혼자체를 기피하는 사회현상과 관련있다고 진단합니다. 통계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81-89년 사이에 셋째아이를 낳는 수는 감소"했지만 "1990년대 초반이후 결혼한 사람들이 아이를 아예 안낳거나 현저히 덜 낳는 경향은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출산 대책으로 싱글세를 고려할 수 있는 근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젊은 청춘들이 결혼을 안하기로 결심하거나 포기하게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진단과 분석없이 고작 세금만으로 결혼과 출산을 촉진할 수 있을거라 믿는 관계자의 나이브함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비웃음을 던졌던 것입니다.

 

진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재생산의 성공(reproductive success)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진화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나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것'. 그것이 진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많이 낳는 것이 성공적인 재생산은 아닙니다. 능력도 없는데 많이 낳았다가 이들 중 아무도 생식을 할 수 있는 연령까지 살아남지 못한다면 이는 진화적 관점에서보면 헛수고, '말짱 꽝'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재생산 전략을 세울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양(quantity)'이냐, '질(quality)'이냐의 문제입니다. 주어진 경제, 사회적 조건에서 나의 에너지, 재화가 감당할 수 있는(affordable) 수의 자손을 생식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재생산의 전략이며, 인류는 이러한 방향으로 진화하며 출산율을 조절해왔다고 인류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Kaplan et al. 2002).

 

우석훈은 위에 언급한 책에서 현재 한국사회에서 아이 하나를 낳아 대학까지 보내는데 드는 비용이 약 3억인데, 게다가 결혼후 마련해줄 집값까지 포함하면 아이 하나를 키워 독립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약 5억 5천이니, 평생 벌어도 6억 이상을 모으기 힘든 직장인이 어떻게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아이를 낳기로 결정할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결혼과 출산의 결정이 온전히 경제적 이유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으로 감히 결혼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싱글세' 운운은 한편의 블랙코메디일 뿐입니다. 더우기, 많은 국제지표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OECD 최저라는, 결혼한 여성이 직장생활을 병행하는데 최악의 조건이라는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에도 그 물건을 구입하여 사용해본 사람들의 리뷰를 꼼꼼히 살펴본 뒤에 신중히 구매결정을 내리는데, 이미 이 시대를 살아본 사람들이 몸으로 체득한 경험은 부정적 레퍼런스(reference)가 되어 자식에게까지 똑같은 경험을 하게하는 것을 망설이게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저출산 대책은 결혼을 안하고 아이를 안낳으니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패널티'가 아니라 '살아보니 좋은 사회',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어 사는 삶이 행복한 사회가 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은 아이가 없는 무자식(childlessness)의 경우 전통적으로는 자발적(voluntary), 비자발적(involuntary)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이 구분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원하지만 임신이 안되는 불임(infertility)만이 비자발적 무자식이 아니라, 차마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사회경제적 환경, 이로 인해 아이없는 삶을 선택하는 것도 온전히 자발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임신, 출산으로 인한 직장에서의 불이익, 경력단절이 뻔히 보이는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미루다가 나이가 많아져 생식을 할 수 있는 생물학적 시계의 끝에 이르면서 불임이 되는 경우, 이는 단순히 자발적/비자발적 구분을 넘어 여성의 재생산이 개인적 사건이 아닌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저출산대책에서 충분히 고려되어야할 부분입니다.

 

한국사회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는 사회의 고령화로 이어지면서 미래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차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라는 현재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저출산 문제의 해결은,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