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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인류의 역사에서 찾는 건강한 출산의 지혜

by 움이야기 2012. 11. 8.




지난주 서머타임이 끝나면서 날이 금새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네 시쯤 되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해 다섯시가 넘으면 깜깜해지지요.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조금 당겨지고, 이제 긴 겨울을 준비해야할거 같은 느낌입니다. 


인간이 겪고 있는 대부분의 질병, 건강하지 못한 상태는 대부분 오랜세월동안 인간의 신체와 감정이 진화해온 방식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급변한 사회환경과의 불일치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중 가장 두드러진 예가 '출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산의 의료화(medicalisation)'은 근대화와 함께 급속하게 나타난 대표적인 의료현상입니다.


1900년에는 단지 미국인의 5%만이 병원출산을 하였는데 1999년 통계에서는 99%의 미국인이 병원에서 출산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통계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겁니다.


병원출산은 감염을 예방하고(이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의견이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산모와 신생아를 구할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건강한 산모의 정상분만에 있어서는 오히려 인류의 진화에 반하는 의료적 개입이 이루어진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분만을 촉진하기 위해 주사되는 옥시토신은 오히려 난산을 초래하고 제왕절개 위험을 높인다는 보고가 있으며, 진통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최근 많이 투여되는 무통분만주사는 태아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모유수유를 방해한다는 연구들이 있고, 병원분만에서 가장 흔히 이루어지는 회음절개는 감염의 위험을 높이고 산후회복을 늦추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많은 불만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병원의 진통, 분만자세입니다. 누워서 진통하고 분만하는 것은 오로지 시술자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중력의 영향을 방해하면서 진통을 힘들게 합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흔한 분만 형태는 쭈그리고 앉는 자세인데, 최근에는 일부 병원에서 앉거나, 서거나, 산모가 편한데로 움직이며 진통할 수 있는 분만형태를 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병원 분만환경은 산모의 필요를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진통시기 태아의 심박동모니터링도 기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태아의 비정상적인 심박동을 빨리 파악하여 위험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제왕절개율을 높이고, 이전에 사람이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하던 진단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human touch'를 빼앗아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분만환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감정적 지지 (social and emotional support)'입니다.   


출산할 때가 되면 남들의 눈을 피해 고립된 장소를 찾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만의 특이한 분만 형태는 함께 할 동료를 찾는 것입니다 (to seek companion). 이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좁아진 골반을 통과해야하는 상대적으로 큰 머리를 가진 아기, 산도의 입구와 출구가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어 여러번의 회전을 겪으며 등을 보이며 나오는(occiput anterior) 분만형태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혼자하는 분만이 어렵기 때문에 선택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하면서 산모들은 진통과 분만의 과정에서 감정적 지지를 찾게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분만중에 마사지를 해주거나, 움직임을 도와주거나, 격려해주고 안심시켜주고, 호흡을 도와주며 함께해주는 조력자가 있는 경우 산모와 태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Klaus (1992)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진통/분만 중 지지는 제왕절개 비율을 2/3나 줄이고, 진통시간을 25% 감소시켰으며, 분만중 포셉(forcep, 집게같은 형태의 분만을 돕는 기구) 사용을 82%나 줄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출산 후 6주가 지난 시점에서 이루어진 조사에서 모유수유비율을 높이고, 산모의 불안과 우울을 감소시켰으며, 높은 자존감, 배우자나 아이와도 더 좋은 관계를 맺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료화된 분만에서는 감염우려를 명분으로 산모 혼자 진통하고 분만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연구들은 지지와 조력이 있는 출산환경이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출산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성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 과정이 '질병'의 형태로 의료의 범주에서 진행되기 보다는 자연스럽고 의미있는 한 과정으로, 산모의 몸과 마음이 가장 편한 형태로, 오랜 진화의 과정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출산문화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