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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영국의 공공의료, NHS를 만나다

by 움이야기 2013. 1. 26.

영국에 오면서 가장 관심 있었던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영국의 의료제도 'NHS (National Health Service)'입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에 퍼포먼스로 등장할만큼 영국인들이 소중히,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공공의료제도이지요.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아직 갈팡질팡, 게다가 미국식 시장경제,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 반대쪽에 있는 영국의 의료제도가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영국에 오자마자 가족 모두가 지역에 있는 NHS 클리닉에 등록을 했습니다. 간단한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과거력, 알러지 등의 정보를 기록하는 절차였지요. 아이들은 학교 담당간호사의 관리를 받으며 연령에 따른 예방접종을 했구요, 그 외 다행히도 아프지 않아 병원 갈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자궁경부암 검사'를 하라는 NHS의 안내 편지를 받았습니다. 영국 오기 전 한국에서 검사를 하기도 했고, 과제 때문에 바쁘고 귀찮아서 안하려 하다가 그래도 NHS의 건강관리프로그램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참여관찰 (Participant Observation)'-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연구방법론의 하나이지요-의 차원에서 검진을 받기로 했습니다.


영국의 자궁경부암 검진은 25세에서 64세 여성에게 진행되며, 25-49세 여성은 3년에 한 번, 50-64세 여성은 5년에 한 번 검사받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 검사에서 경증의 이상소견이 보이면 추가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검사가 진행되고, 중증의 이상소견이 있을 경우 질확대경검사(Colposcopy)를 하게 됩니다. 편지에는 자궁경부암검진이 무엇이고, 왜 받아야 하고, 검사 진행방법은 어떠하고, 검사의 신뢰도는 어떠한지 등을 설명하는 자세한 안내문이 동봉되어 있었습니다.


오늘, 열흘 넘게 눈이 내리는 날, 등록되어 있는 NHS 클리닉에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3층 건물의 아담한 클리닉에는 열한 명의 의사(GP)가 근무하고 있었고 두 명의 리셉션니스트가 접수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주 북적북적하지는 않았지만 예약시간에 맞춰 예방접종을 받으러 온 꼬마들, 감기치료를 온 아이들, 그리고 각종 진료를 받으러 온 어른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동네에 등록해 주치의의 개념으로 일차 진료를 받는 곳이라 그런지 접수자와 환자들은 친숙한 분위기였습니다. 


예약시간이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습니다.

담당간호사가 월경시작 날짜 등을 묻고, 검사과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혹시 필요하면 옆에서 손 잡아줄 사람"을 불러주겠다는 것입니다. 너무 생소한 일이라 의료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 밝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으니 너무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 의사를 꼭 물어보도록 되어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하지만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구요. 


자궁경부암검사는 진료실 침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도 인상깊었던 것은 다리를 위로 올려야하는 산부인과 의자가 아니라 일반침대에서 검진이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산부인과 의자는 많은 환자들이 수치심을 이야기하지만, 검사자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것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반대로 일반침대는 검사자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지요. 검사 진행 중에 적당한 질경을 찾느라 시간이 걸리면서 간호사는 연신 "Are you okay?"하고 제게 물었지만 저는 오히려 불편한 자세로 검진하는 당신이 오케이한지 걱정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검진이 끝났습니다. 아무쪼록 검사 결과가 이상 없어서 추가로 NHS를 체험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네요. 





대기실에는 다양한 건강정보들이 놓여있었습니다. '예방'에 중점을 두는 NHS의 건강시책을 잘 보여주는 듯 합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자료는 'Questions to ask'라는 안내문이었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될 때는 주저하지 말고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하세요"

"잘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는 의사에게 적어서 설명해달라고 하세요"

"최선의 치료를 위해서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치료의 부작용이나 위험에 대해 물어보세요"

"통역이나 커뮤니케이션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면 병원에 요청하세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병원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에게, 치료비 부담없이 무상진료를 받는 NHS 시스템은 여러 우려되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러운 제도입니다. 누구나 건강하게,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우리도 소중하게 잘 지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