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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한의학을 연구하는 다양한 방법론

by 움이야기 2013. 4. 15.

모두 잘 지내시지요?

한국은 아마 봄꽃향기가 가득하겠네요. 사월이니까요.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 부르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저에게는 벗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봄날 치루던 대학 중간고사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강의실에 앉아있기에는 너무 아쉬운 봄날들, 왜 꼭 중간고사는 꽃놀이가 절정에 이를때 치뤄야하는지.. 많이 투덜댔거든요. 

그런면에서 어쩜 영국은 공부하기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삼월말까지 매일 눈, 우박,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햇빛을 찾아 이 주간 남쪽 나라에 갔다왔는데 여전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쓸쓸한 날씨예요. 

공부밖에 할거 없는 날씨랄까요. ^^


저는 요즘 논문준비를 하면서 '보완대체의학 (Complementary & Alternative Medicine)'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읽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잠깐 말씀드렸던것처럼 전세계적으로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고, 치료를 위해 보완대체의학을 이용하는 환자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 보완대체의학은 제도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를 필요로하는 이용자들의 요구와 그에 따른 수요의 증가로부터 제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완대체의학의 인기와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비판은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증거 (evidence)'는 학문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이되며 특히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의학이라는 학문에서 엄밀한 증거의 중요성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것입니다. 그런데, '보완대체의학'에서 증거란 과연 무엇이어야하는지, 서양의학과 똑같은 잣대의 증거를 요구하는게 맞는 것인지, 보완대체의학의 효과와 안전성을 증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연구방법론 (methodology)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 의약학의 연구에서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방법론은 '무작위 대조군 실험연구 (Randomised Controlled Trials: RCT)' 입니다. 


임상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눈 후 한 그룹에 속한 참가자들에게는 약이나 시술등 치료를 실시하고 나머지 한 그룹에 속한 참가자들에게는 치료를 하지 않은 후 양쪽 그룹의 결과를 비교하는 연구방법입니다. 엄격한 연구를 위해서는 치료를 하는 그룹이나 치료를 하지 않는 그룹에 마치 동일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연구디자인을 합니다. 이를테면 똑같이 생긴 가짜약을 준다던가, 가짜침을 놓는 방법등을 이용해서요.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그룹에 속해있는지 알 수 없고, 보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치료자도 자신이 주는 약이 진짜약인지, 가짜약인지 모른채 임상실험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혹시 영향을 줄수도 있는 심리적 효과까지 배제한채 가급적 '객관적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입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많은 신약이 개발되고 승인되고 있으며 국가의 지원을 받는 의료체계 속에 포함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객관적 과정과 증거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도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국 국립보건원 (NIH) 산하에는 국립보완대체의학센터가 만들어져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영국에서도 NHS 제도 안에 보완대체의학을 포함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증거 (evidence)', 좀더 엄밀히 말하면 RCT와 같은 서양의 과학적증거들입니다. 


이를테면 한약을 투여한 군과 투여하지 않은 군, 침치료를 받는 군과 침치료를 받지 않은 군에서 치료효과가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증명해내야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한의학계에서도 '근거중심의학 (evidence-based medicine)'이라고 하여 이러한 실험을 통해 치료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과 노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양의학적 연구방법론에 대해서는 한의학적 치료를 서양의학의 틀 안에서 증명해내려하는 모순이 있으며 보완대체의학의 방법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적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이며 망가진 한부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균형과 조화를 중요시합니다. 이를테면 임신을 돕는 치료에서도 '배란', '난소', '자궁' 등 어느 한 부분을보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임신'을 할 수 있는 균형잡힌 최적의 건강상태를 치료의 목표로 하는 것처럼요. RCT에서는 대부분 약의 한 성분이나 한가지 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지만 실제 한의학적 치료에서는 여러가지 약이 복합처방되어 '군신좌사'라는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치료가 이루어지며 침, 뜸 등의 다양한 치료가 병합되어 이루어집니다. 


무엇보다도 한의학을 포함한 많은 대체보완의학치료의 특징은 '개별성'에 있습니다. 똑같은 질병이나 증상이라고 하더라도 환자의 체질, 환경,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치료가 이루어지는데 똑같은 약을 일률적으로 투약한 후 효과가 있다 없다를 판정하는 RCT  연구방법은 그 자체로 효과를 증명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많은 보완대체의학방법론에 대한 연구논문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 중 하나가 보완대체의학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환자와 치료자의 긴밀한 관계입니다. RCT 연구에서는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치료하는 치료자와의 관계, 영향 등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지만 실제치료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특히, 환자와 치료자의 긴밀한 관계는 훌륭한 '치료적 효과 (therapeutic effect)'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배제한 연구는 어쩌면 치료의 진짜 효과를 증명해낼 수 없을지 모릅니다. 


서양의 과학적연구가 가진 이러한 한계들을 보완할 수 있는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연구방법론으로 제시되는 것이 바로 '질적연구 (qualitative research)' 입니다. 


실제로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환자들은 보완대체의학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무엇을 효과라고 인식하고 체험하고 있는지를 참여관찰 (participant observation), 인터뷰 등을 통해 연구하는 방법으로 인류학적 연구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RCT 연구에서 한가지 약을 주고 두 집단의 임신율을 비교하는 것으로 치료효과를 증명한다면 질적연구에서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환자가 느끼는 심리상태, 삶의 질의 변화, 치료자와의 관계에서 얻는 연대와 지지 등 눈에 보이는 임신율 뿐 아니라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층위의 치료효과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 치료효과뿐 아니라 치료의 과정에서 겪는 환자의 갈등과 어려움들도 질적연구를 통해 확인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번 질적연구를 통해 영국의 불임여성들이 보완대체의학치료를 받으며 경험하는 치료효과와 갈등, 협상의 과정을 살펴보려 합니다. 한국에서도 서양의학의 틀 속에서만 한의학의 효과를 증명하려할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연구들로 한의학적 치료의 '증거'들을 드러내고, 보완하고 발전시켜야할 부분은 무엇인지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매일 BBC 헤드라인으로 보도되는 북한관련 뉴스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외국친구들의 걱정어린 안부인사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날씨만큼 한반도에 평화가 가득하길요. 그리고 건강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