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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인터뷰] 
‘거리’는 9천 킬로미터였지만 ‘거리감’은 없었다

by 움이야기 2014. 9. 1.


[인터뷰] 2년 만의 재회, 그리고 밀린 수다

‘거리’는 9천 킬로미터였지만 ‘거리감’은 없었다


의료인류학을 공부하러 영국으로 떠났던 문현주 원장님이 돌아왔습니다. 2년 동안 든든하게 그 자리를 지켜왔던 조현주 원장님은 이제 임무를 완수하고 움의 가운을 벗습니다. 또 다른 변화의 시기로 접어드는 연착륙 시기, 함께 진료하는 2주의 기간이 지나고 9월부터는 다시 문현주 원장님이 움여성한의원의 진료실을 지킵니다. 돌아온 자와 자리를 지킨 자가 함께했던 어느 날, 2년 전 이맘때처럼 수다의 꽃을 피웠습니다.



무엇보다 2년 만의 재회인데 다시 만난 그 순간이 궁금했습니다. 어땠을까. 믿고 신뢰했던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어색하지 않았을까.


“마치 내 아바타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 한국 들어와 한의원에서 다시 처음 만났어요. 2년 공백이 있었지만 딱 두 시간쯤 지나니까 ‘아, 여기가 내 홈그라운드구나.’ 편안해졌죠바로 다시 익숙해질 수 있을까가기 전에 내가 진료할 때 하는 말들을 녹음이라도 해둘 걸 그랬나오기 전에 많이 걱정했거든요근데 녹음이 되어 있는 거예요글쎄조 원장님 진료하는 걸 지켜보니 마치 내 아바타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어쩌면 내 견해와 다른 게 하나도 없을까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감동이었죠. 환자들이 가장 혼란스러울 때가 여기서 이 말 듣고 저기서저 말 듣는 거거든요당연히 의사도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으니까.

: 배경이 같으니까요. 함께 수련하고 공부하고 늘 대화하고. 환자들은 바뀌는 거 싫어해요. 그래서 저도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죠. 그동안 움이, 문 원장님이 쌓아온 신뢰가 크니까. 바뀌는 거 없을 거다, 안심을 시켜 드리려고 애썼어요. 다행히 환자들도 그 부분은 낯설어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 2년 동안 환자들이 좋은 진료를 받았겠구나 싶더라고요. 잘 이어져온 거 같아요병원도 꾸준히 잘 유지됐고 전 별걱정 없이 영국에서 잘 지내다 왔어요. 그리고 그동안 뉴스레터 통해서 영국에서도 계속 소식 전하고 이야기도 했으니까 저를 본 환자들이 반겨 주시더라고요.

: 그동안 좋은 경험 했어요. 새로운 변화를 겪는 게 설레고 좋기도 했지만, 부담감도 컸거든요. 규모가 작은 곳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10년간 터 닦아놓은 게 탄탄해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이전에도 불임 환자들을 많이 봐왔지만 여기서 좀 더 확대된 진료 경험을 많이 했죠. 환자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현재는 부족해서 더 노력해야 할 것에 대한 현실감도 또렷해졌죠. 큰 병원 과장으로 근무할 때는 몰랐던 한의원 운영에 대해서도 배우고요. 전보다 자신감도 커지고 비전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다른 곳에서 개원하더라도 ‘움’과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어요

: 늘 생각하는 게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같이 고민하고 나누고 연구하고. 오래전에 분원을 내자는 제안도 받아봤지만, 단순히 규모를 확대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함께 비전을 공유하며 진짜로 그걸 실현해갈 수 있는 사람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죠. 조 원장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 역할을 훌륭히 해줬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나가고 싶어요.


그동안 블로그와 뉴스레터를 통해 영국에서의 생활과 공부의 과정을 지켜보긴 했지만 직접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연구 들을 했는지, 무슨 고민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영국에서의 공부, 한국의 현장에서 계속 이어가고 싶어”



: 석사과정 초기엔 건강과 의
료에 관한 다양한 인류학적 배
경을 공부하고 연구했죠. 논문
주제는 ‘영국의 보완대의학
을 통한 불임 치료’였고요. 영
국의 보완대체의학에서는 불임
치료를 어떻게 하는지, 불임 환
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어
떤 의미가 있는지또 영국의
 의료제도에서 양방의학과 보완대체의학이 맺고 있는 관계는 어떤지 등을 주제로 에든버러에 있는 한 클리닉에서 현장연구를 했어요

인류학에서는 현장연구가 매우 중요해요. 왜냐하면 의료인류학 관점에서 보면 질병, 의료, 건강이 단순히 개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맥락들과 연결돼 있다고 보거든요. 즉 한국에서의 질병 다르고 아프리카 질병 다르고 영국다르고이런 거죠질병의 현상을 볼 때에는 직접 현장에 들어가 관찰하는 게 인류학에서 아주 중요한 방법론이에요

박사과정 연구의 초점은 ‘한국의 스트레스 환경이 여성의 생식 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건데 한국에서 현장연구를 계속하고 싶어요. 제 연구는 진화학적 관점을 중시하는데요.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재생산 잘하는 종은 남고 나머지는 도태된다는 게 진화의 핵심이죠. 그럼 점점 더 재생산을 잘하는 쪽으로 가는 게 맞는데 왜 현대의 많은 여성이 불임유산의 문제를 겪고 있을까에 대해 의문을 갖고 연구하다보니 재밌는 걸 발견했어요. 진화학적 관점에서는 사회적 환경 혹은 거주 환경 자체가 생식기에 우호적이지 않을 때 오히려 생식능력을 억제하는 게 질병이 아니라 적응이라는 거죠예컨대 적들이 아주 많다던가 기후가 척박하거나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거나 먹을 게 없을 때몸 스스로 재생산을 하지 않는 거예요지금 낳아봤자 자신이나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몸 자체가 알아서 판단하는 거니까 적응력이 뛰어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치료와 함께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임신하는 게 불리한 거예요. 근데과로스트레스 등 내 몸의 환경도 결국은 나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고 그렇다면 그 관계를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노동시간이 이렇게 높고 행복지수가 이렇게 낮은 나라에서 인위적인 저출산 정책만으로 갑자기 출산율이 올라가진 않을 테니까요.

물론 쉽지 않은 연구긴 해요. 스트레스가 원인이란 얘길 많이 하지만 뚜렷하게 과학적 혹은 의학적 연구로 증거를 보여주는 사례는 별로 없거든요. 밝히기 어려운 거죠. 스트레스받는 군, 받지 않는 군을 나누기도 어렵고 스트레스 종류도 워낙 다양하고 요. 막대한 연구비도 들고 단기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박사과정 학생 한 명이 하기엔 거의 불가능하죠.

그래도 연구자들은 목소리를 내고 증거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 주제만큼은 계속 고민 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한국에서 연구하고 성과를 내고 싶어요.


한국에서 한의원을 맡았던 쪽은 지난 2년 동안 임상을 통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진료실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그것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의사가 전공했으면 연구하고 공유하고 이바지해야”



: 공부하고 싶은 것들이 또 산더미처럼 쌓였죠. 불임 환자들 계속 보면서 의학적으로 이걸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지점들을 임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같은 분야의사든 대학의 연구자들이든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네트워킹하면서 같이 실험하고 연구하고 결과물을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전공을 했으면 사명감으로 조금이라도 그 분야의 발전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사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금환 궁테라피를 작년에 도입하면서 여성의 질환을 치료할 때 골반 주위의 구조적 문제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줘야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졌죠그 공부를 더 깊이 하고 임상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발전시키고 싶어요. 쉬는 동안 건강식에 대해 공부도 해볼 예정이에요. 불임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식생활을 좀 더 의학적으로 제시해보고 싶은 꿈도 있네요. 심리적인 부분도 어떻게든 환자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고 싶어요. 아이를 낳는 것에 성공하는 것만이 불임 치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낳든 못 낳든 과정에서 인생이 파괴되는 것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다른 것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무조건 낳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환자들을 만나면서 자주 하게 되거든요.

난임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참 보람되는 일이에요. 치료가 잘 이루어져 아이를 갖게 된 환자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감사해요움이 10년 넘게 한자리에서 버틸 수 있었던 힘이 그런 결과들 덕분이기도 하고요. 환자도 저도 행복하려면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야죠.


이제 움여성한의원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까? 지난 2년이 어떤 자극이 될까? 영국의 사례를 경험하면서 얻은 배움, 그리고 그동안 움을 대신 운영하면서 얻은 배움에 관해 물었습니다.


“환자 중심의 다양한 의료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갈 것”


문: 여기서는 한의학만 봤는데 밖에서 다른 다양한 보완대체의학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접한 게 앞으로 진료방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영국의 클리닉은 침구사, 심리상담사, 영양학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결합해 있어요. 한국처럼 통합된 의료 면허제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한국에서는 제도권 의학인 한의학이 다른 대체보완의학과 결합하는 데 여러 제약이 있지만 어쨌든 한의사 스스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 법적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협력이 가능할 수 있을 거예요닫혀 있으면 그만큼 치료 범위도 좁아지죠. 한양방의 협력도 마찬가지고요.

: 한국에서 한의사는 물리치료사를 고용할 수도 없고 병원 내 요가 클래스 같은 것도 둘 수 없지요각 사업자가 네트워킹하면서 협력 관계를 맺는 것만 가능한데요. 환자를 중심으로 한방, 양방 그리고 그외 여러 가지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네트워킹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제도 문제가 참 아쉽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게 우선적인 문제죠.

: 한국의 한의학에 대해 외국에서는 많이 놀라요. 한양방이 제도적으로 공존해 건강보험도 적용되면서 이렇게 두 의학이 함께 가는 경우가 없거든요. 이게 잘 발전해 간다면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의료에 관해서는 의사, 한의사 등 의료인들뿐 아니라 인류학자, 사회학자 등이 결 합해 함께 고민해야 해요. 질병, 치료, 그리고 건강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고려되어야 하니까요.

병원이 점점 비즈니스가 되어가고 있는 위험한 흐름 속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해나갈 것인지 의사에게는 어려운 숙제죠. 결론적으로는 한의원을 꾸려가는 데 있어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가능한 범위에서 다양한 협력 관계를 맺어 무엇보다 그 혜택이 환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9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각자 보낸 2년의 세월이었지만 함께 만들어온 성과가 있었기에 재회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 성과들이 조금씩 가시적인 결과물로 기록되고 공유되길 기대해 봅니다. 지막으로 두 현주 원장님의 ‘안녕’을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리고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