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움 다이어리

[영화이야기] 자백

by 움이야기 2016. 11. 3.

어린 시절, 저는 '반공 소녀'였습니다.

유난히 신문 읽는 것을 좋아해서 정치면, 사회면 가리지 않고 꼼꼼히 읽었는데요. 그때 자주 등장하는 뉴스가 '간첩단 사건'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산으로 삐라를 주우러 다니기도 했고, 혹시 상금이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수상한 사람을 보면 파출소에 신고하기도 했지요. 삼십 년이 훨씬 넘은 오래된 추억입니다.

그런데 군사독재 정권이 끝나자 70, 80년대 간첩단 사건으로 옥살이했던 수많은 사람이 자신은 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던 거였다며, 절대 간첩이 아니었다고 재심을 청구했고 대부분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영화 <자백>은 국가 기관이 권력을 이용해서 거짓과 조작, 폭력으로 간첩을 만들어냈던 사건이 단지 과거의 어두운 역사일 뿐 아니라 지금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탈북하여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오성 씨는 2012년 간첩 혐의로 체포됩니다. 여동생의 법정 증언이 유력한 증거였지요. 하지만 동생의 증언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한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 '이렇게 하는 게 오빠를 위한 길이다.'는 국가정보원의 협박과 회유의 결과였습니다. 1심에서 무죄 선고가 나오자 검찰은 또 다른 증거를 내놓았습니다. 국경을 넘어 북한에 갔었다는 중국 당국의 증명서인데요. 이 또한 조작된 허위 증거로 밝혀졌습니다. 결국, 유오성 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요.


영화 <자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으로 조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졸지에 '간첩'이 되었고, 그 충격과 상처로 정신 이상이 왔지만, 평생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 놓았던 한을 모국어로 내뱉는 이제 백발이 된 노신사의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잘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사선을 넘어 자유를 찾아 남으로 왔지만,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해야 이 땅에 살 자격을 주겠다는 권력의 횡포에 화가 났고, 과거 간첩 조작의 중심부에 있었던 사람이 여전히 권력의 실세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에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국민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불의에 저항하며 싸울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조금씩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