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움 다이어리

루마니아에서 배우는 '낙태 금지'의 교훈

by 움이야기 2016. 10. 24.


1964년부터 1989년까지 25년간 루마니아의 전제적 지배자로 군림하던 니콜라이 차우체스쿠는 정권을 잡자마자 낙태 금지, 피임 금지를 명령하였습니다. 출산장려 정책의 일환이었지요. 낙태금지 정책은 성공했을까요? 과연 루마니아 여성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200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은 루마니아의 그 시절, 불법 낙태의 '범죄'를 가슴 아프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임신 4개월이 된 가비타의 낙태를 돕게 된 기숙사 룸메이트 오틸리아. 어렵게 돈을 빌리고 호텔을 구하고 불법 시술사를 데려왔지만 그녀들이 겪어야 했던 폭력, 모멸, 굴욕은 차마 말로 옮길 수 없을 정도입니다. 배 속에 품었던 아이를 보내는 과정 역시 마치 범죄의 증거를 폐기 처리하는 것처럼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이루어졌지요. 슬퍼하고 애도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가비타, 언제든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으로 '낙태'가 남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오틸리아. 그들의 침묵이 비명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으로 '낙태 금지'도 막을 내렸습니다. 25년간의 낙태금지 정책이 루마니아 여성들의 건강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 결과가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에 발표되었는데,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낙태 금지 정책이 시행된 이후 모성 사망률, 특히 낙태 관련 모성 사망률이 급격하게 증가하였습니다. 주원인은 과다출혈과 감염이었지요. 안전한 낙태를 했더라면 죽지 않아도 되었을 여성들이 매년 500명씩 죽었고, 루마니아의 모성 사망률은 유럽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히 높았습니다. 이렇게 높아진 모성 사망률은 낙태금지 정책이 폐기 된 지 한 해 만에 반으로 줄었고요.






낙태를 금지하면서 출산율은 기대했던 것처럼 높아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몇년간은 반짝 상승했지만, 점차 낮아져 낙태를 금지하기 이전과 비슷해졌지요.






오히려 고아원에 입소한 아이 수만 늘어났다는 게 연구의 결과입니다.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해 수술 의사를 중징계하겠다는 입법예고에 의사들이 수술을 거부하겠다고 맞섰고(관련 포스팅: 낙태를 둘러싼 논란, '여성 건강'은 없다), 여성들은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나의 자궁, 나의 것'을 외쳤습니다. 결국 복지부는 이를 재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낙태는 단순히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의 충돌이 아닙니다.


천 명의 낙태에는 천 가지 사연과 이야기가 있지요.

한해 수십만 건의 임신중절이 이루어지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금지 또는 모르는 척이 아니라 이제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 안전한 낙태에 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여성의 건강'이 놓여야 합니다.



한방 부인과 전문의가 진료하는 움여성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