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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by 움이야기 2015. 9. 16.

햇살이 너무 좋은 화요일, 성산동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바로 옆 동네에 있으면서도, 언제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왔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슬픈 집'이라 불리는 이곳은 일본군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공간입니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꽃밭에 서 있는 꿈많은 소녀, 그리고 평생의 한을 마음에 품고 살아온 할머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집이 지어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지요. 원래는 서대문 독립공원 안에 박물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설계까지 다 마쳤는데 '더럽혀진 여성'을 기념하는 것이 순국선열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반대 때문에 무산되고 이곳에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어두운 지하 전시관에서는 전쟁의 포화 소리와 함께 돌밭 길을 걸어가는 소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전쟁터의 성 노예가 된 소녀들의 덩그러니 놓인 신발, 이제 주름 가득한 할머니가 되어 피눈물로 이야기하는 증언이 마음 한구석을 날카롭게 찌릅니다.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 그 자체이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피해자 여성들의 고통의 목소리가 적힌 '호소의 벽'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일본군 '위안부'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국가범죄로 이루어진 '성 노예'의 아픈 역사, history를 herstory로 만든 용감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는데 천 번째 시위에서 세워진 '평화비(소녀상)'입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돈 벌러, 먹고살 수 있다는 이야기에 따라나섰던 14~19세 소녀들이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그저 과거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생각해왔는데 매일 까르르 웃는 우리 딸아이 나이의 소녀라는 생각에 마음이 메어졌습니다.


추모관에서는 평생의 소원이던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할머니들을 기리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햇볕 따사로운, 박물관에서 가장 밝은 곳에 모셔진 할머니들의 이름 옆에 저도 예쁜 꽃 한 송이 올려놓았습니다.


1층에는 '세계분쟁과 여성폭력'에 대한 상설전시관이 있었는데,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군인이 아니라 여성이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정원을 나와 기획전시관에서는 '베트남전 희생자'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요.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가해자'이기도 한 우리의 역사를 대면하며 깊은 반성과 사죄의 마음을 갖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오다가 단체관람을 위해 박물관을 찾은 이십여 명의 일본 청소년들 만났습니다. 이렇게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청산을 위한 행동을 함께할 때 진정한 화해, 평화의 미래를 만날 수 있겠지요. 요즘 <무한도전>에서 우토로 마을, 하시마 섬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방송되면서 슬픈 현대사의 비극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평생의 한을 품고 사시다 사과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많은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더 늦기 전에 진정한 사과와 반성으로 피해자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달래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