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주의 여성의학 (13)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한 아픔
“건강 돕는 치료자라면 ‘사람의 아픔’까지 살펴야”
몸이 참을 수 없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나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철학적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과연 나는 아픈 것인가, 아프지 않은 것인가.”
질병은 장기가 갖는 것이며, 아픔은 사람이 갖는 것
이처럼 나의 아픔과 의료의 영역에서 인정하는 아픔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있습니다. 의사이자 공중보건학자인 카셀(Cassell)은 “아픔(illness)은 환자가 병원에 갈 때 느끼는 것이고 질병(disease)은 진료실에서 받아 나오는 것”으로 “질병은 장기가 갖는 것이며, 아픔은 사람이 갖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은 큰 병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환자의 불편함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원인불명’ 또는 ‘신경성’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며 막막함을 증가시킵니다. 나의 불편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거나 인정받을 수 없고, 원인이 없으니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으니까요.
인터뷰를 통해 환자의 질병 경험을 드러낸 한 책에서 어떤 분은 원인을 찾지 못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한 끝에 암 진단을 받고 나서 차라리 마음이 후련해지더라는 슬픈 사연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의학적 권위를 통해 질병명을 부여받고 ‘공식적인 환자’가 되었을 때 환자가 수행하는 권리와 의무를 사회인류학에서는 ‘아픈 이의 역할(sick role)’이라고 부릅니다.
낫기 위해 노력하며 치료에 협조해야 하는 의무와 함께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고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에서 열외가 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인을 찾지 못한 ‘아픔’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나의 아픔을 인정받지 못한 채 환자의 권리를 누릴 수 없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어렵습니다.
월경통, 난임 등 ‘아픈 이의 역할’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아픔들
매달 한 번씩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는 원인불명 월경통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질병으로 진단을 받더라도 만성병이나 사회적 낙인이 찍힌 질병-에이즈나 성병 같은-에서는 ‘아픈 이의 역할’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도 합니다.
난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임하지 않고 임신 시도를 한 지 일 년이 넘었는데 임신이 안 되는 상태’라는 의학적 진단 기준에는 부합하지만,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는 ‘원인불명 난임’이 50%가 넘고 여전히 사회문화적으로 난임을 둘러싼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기에 ‘아픔과 질병 사이’, 그 어디에서 많은 여성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의 진단은 점점 세밀한 단위까지 좁혀져 장부, 조직, 세포를 넘어 유전자를 살피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프다는 것은 ‘사람’의 아픔입니다. 또한, 아픔은 몸의 불편함 뿐 아니라 마음을 힘들게 하고 아픈 이의 일상과 관계를 해치기도 합니다.
환자의 건강을 돕고자 하는 치료자라면 늘 아픔(illness)과 질병(disease) 사이의 간극을 좁히며 ‘사람’을 살피는 일에 게으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움여성한의원 문현주 원장
* <헬스데이뉴스>에 여성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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