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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움여성한의원 칼럼] 가습기 살균제는 시작일 뿐

by 움이야기 2016. 5. 7.

문현주의 여성의학(19)


가습기 살균제는 시작일 뿐

환경호르몬의 독성, 더 끈질기게 묻고 따져야






건강에 치명적인 유해 물질의 유통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독성물질로 인해 심각한 폐 손상을 입고 사망하거나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연일 언론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죠. 어쩌면 조금 더 깔끔하고 부지런한 아빠, 엄마였을 거고요. 


얼마 전 TV에서 관련 뉴스를 보고 함께 일하는 직원 한 명이 깜짝 놀라며 몇 년 전 제 진료실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를 썼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제가 기침이 잘 낫지 않자 나름 신경 쓰며 청결을 유지한다고 살균제를 조금씩 넣어 가습기를 틀었다고요. 이상하게도 그 후 몇 년간 겨울만 되면 멈추지 않고 기침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찔했습니다. 결국 살아있는 게 행운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요.


건강에 치명적인 유해 물질이 어떻게 버젓이 유통될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기가 막히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닙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DES라고 불리는 합성 에스트로겐 디에틸스틸베스트롤(diethylstilbestrol)이지요. 





1938년 위장장애와 현기증, 피부 치료제로 개발된 DES는 1947년 유산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하버드 대학 연구진의 논문을 근거로 하여 30여 년간 유산 방지약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미 1930년대 동물 연구에서 DES에 노출된 생쥐가 유방암, 간암 등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결과가 있었지만, 위험성은 감춰진 채 건강하고 안전한 임신 유지를 원하는 임산부들에게 약, 주사, 질정, 심지어는 DES가 포함된 비타민 제제로 투여되었지요. 엄마의 자궁 속에서, 그리고 모유를 통해 DES에 노출된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자궁암, 유방암, 난소암, 질암, 자궁내막증, 선근증, 난임, 유산 등을 겪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겪고 난 후에야 DES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일상적인 노출로 생식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호르몬


가습기 살균제뿐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늘 유독 화학물질 속에서 살고 있지요. 아침이면 향기 가득한 샤워 젤로 샤워하고 샴푸, 린스로 머리를 감으며 화장품, 헤어스프레이로 단장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린 즉석 음식으로 아침을 때운 후 드라이클리닝 해 놓은 옷을 입고 출근합니다. 따뜻한 캔 커피를 마시며 플라스틱 서류 박스 속에서 일하고 주머니에는 코팅된 영수증이 가득하지요. 퇴근 후엔 농약에서 자유롭지 못한 저녁 식사를 하고 세제를 풀어 빨래와 설거지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환경호르몬이라 불리는 이들 화학물질은, 특히 호르몬 분비 등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작용으로 생식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농약이나 살충제, 비스페놀 A, 프탈레이트 등 환경호르몬에 많이 노출된 남성일수록 정자가 약하다는 연구가 있고요. 해독 기능은 약하면서 몸에 지방이 많아 화학물질이 쉽게 축적되는 여성은 환경호르몬의 피해를 더 크게 받습니다.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분자 구조를 가진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면 에스트로겐 의존성 종양인 자궁근종이나 선근증, 자궁내막증 등의 발병 위험이 커지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배란장애나 월경불순이 발생하거나 난임, 유산 등 임신에 어려움을 겪곤 하고요. 게다가 여성의 환경호르몬 노출은 가장 취약한 시기인 임신 중 태아와 젖먹이에게 독성 물질을 전하면서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평생 건강을 해치기도 합니다.


건강에 미치는 위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환경호르몬을 포함하고 있는 제품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미량일 뿐이라거나 질병과의 관련성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다는 핑계와 함께요. 하지만 매일매일 나도 모르는 새 공기처럼 스며드는 환경호르몬은 조금씩 내 몸에 쌓이면서 어느새 심각하게 건강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안전이 보장되기 전까지 잠재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마땅히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크게 이슈가 되곤 있지만 여기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여러 환경호르몬의 독성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묻고 따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조금은 까칠하게 주변의 환경을 살필 때 좀 더 안전한 사회는 가능할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의 건강도 지킬 수 있습니다.





<헬스데이뉴스>에 연재하는 '문현주의 여성의학, 움이야기' 열 아홉번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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