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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책이야기] <아픔이 길이 되려면>, 건강은 사회 속에서

by 움이야기 2017. 9. 16.

[책이야기] <아픔이 길이 되려면>, 건강은 사회 속에서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분들께 지금 몸 상태는 어떠하며 치료를 통해 어떻게 개선할지 등 질병의 원인과 치료 과정을 설명하는 노력 못지않게 일상에서 스스로 노력해야 할 생활수칙을 자세히 안내하고 강조하는 편입니다. 균형이 깨져 아픈 몸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하지만 빨리 좋아지고 좋아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매일매일의 생활이 중요하니까요.

건강한 생활수칙이라는 게 뭐 특별한 건 아닙니다. 몸에 좋은 음식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잘 자고 스트레스 덜 받는, 누구나 원하는 그런 일상이지요. 하지만 가끔 이런 조언이 공허한 잔소리는 아닐까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스트레스받고 싶어서 받는 사람 아무도 없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간절하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야근이나 휴일 근무를 강요받기도 하고 예측 불가능한 스트레스를 만나 마음이 힘들 때도 자주 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마음이 무겁고 아무 잘못 없이 혐오와 차별에 시달리기도 하지요.

몸과 마음이 힘들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은 그냥 내버려 두고 아픈 사람에게 "왜 이렇게 건강관리를 못한 거야?", "열심히 노력해서 다시 건강해져야지."라고 말하는 건 병의 뿌리를 그대로 남겨둔 미봉책일 뿐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책입니다. 건강해지는 노하우를 담았다는 책은 많이 있지만 이 책은 그 너머 질병을 유발한 근본적 원인, 아플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을 살피고 있습니다. 사회역학자인 저자는 소수자로 겪는 차별, 고용 불안정, 사회적 재난, 열악한 노동 환경 등이 어떻게 몸에 각인되어 질병을 일으키고 건강을 해치는지를 꼼꼼한 데이터와 다양한 연구 결과 등의 증거를 제시하며 설명합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건강연구', '세월호 생존자 및 가족 연구' '소방공무원 건강 연구', '성소수자 건강 연구'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예민하고 아픈 곳에서 당신의 아픔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질병의 근원을 찾아 바꿔나갈 때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건강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참 많은 아픔을 겪었지요. IMF 이후의 고용 불안정, 적자생존의 극심한 경쟁,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사고와 세월호 침몰까지.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아팠지만 불행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아픔의 근원을 살피지 못하고 개인의 비극 또는 질병이라 여기면서 알아서 조심하고 책임지는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우리는 아픔을 길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 이제 좀 더 예민해져야겠습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건강해지고 싶다고 소리 내야겠습니다.

아프기 전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큰 치료이며 안전하고 편안하며 차별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함께 건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