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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이야기

[문현주의 여성의학] “불임은 질병일까? 나는 환자일까?”

by 움이야기 2015. 5. 14.



헬스데이뉴스 연재 칼럼 [문현주의 여성의학 움이야기]


"불임은 질병일까? 나는 환자일까?

난임의 의료화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


움여성한의원 문현주 원장


불임 환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는 통계 보도를 최근 몇 년간 연례보고처럼 듣습니다. 누군가는 결혼 연령이 늦어져 그렇다 하고 또 누군가는 스트레스, 과로 등의 환경이 문제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실제 불임이 증가한 게 아니라 불임으로 진료받고 치료받는 환자 수가 늘어났을 뿐이라고도 하고요. 그런데 과연 불임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일까요? 불임 여성은 환자인 걸까요?

 



불임보단 난임


의학적으로 불임은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면서 1년 이내에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뜻합니다. 85~90%의 남녀는 임신을 시도하면 거의 1년 안에 임신이 되는데요. 그렇지 못하면 불임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이때부터 임신은 개인의 사적 영역을 넘어 치료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불임 대신 난임이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처음에는 부정적 의미를 거부하는 당사자들의 요청 때문이었지만,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뜻의 불임이라는 단정적인 표현보다 임신이 어려운 상태를 말하는 난임이 실제로 더 정확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출산과 임신의 의료화 경계하기


난임이 의료의 범주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습니다. 사회학자 베커(Becker)1960~1970년대만 해도 아이를 원하지만 임신이 안 되는 것은 비자발적 무자식(involuntary childlessness)’이라는 하나의 현상일 뿐 의료 체계 내에서 치료해야 하는 질병은 아니었다며 난임의 의료화(medicalisation)’ 문제를 지적합니다


의료화란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을 의학적 문제로 다시 정의해 전문가 집단이 통제하는 근대적 현상인데, 대표적인 것이 출산입니다. 미국에서는 100년 전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서 분만했지만, 지금은 99%가 병원에서 출산합니다. 한국 역시 196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가정분만이 이젠 희귀한 현상이 되었지요. 바로 출산의 의료화 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출산의 의료화를 뒤따르는 것이 임신의 의료화입니다. 여성의 배란주기는 진단 기기로 감시되고 임신을 위한 성관계 날짜도 지시되며, 약물로 월경주기가 조절되기도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최첨단 기술은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켜 이식하고, 수정란의 유전자를 이식 전에 미리 분석하기도 하지요. 이제 점점 임신을 위해서는 병원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은 단지 몸에서 일어나는 생물학적 변화만이 아니라 여성의 삶의 총체적 전환이며, 여전히 많은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의 자격과 역할을 구분 짓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임신 못 하는 여성은 비정상이라는 굴레 속에서 자존감을 잃기도 하고, 가족 내에서의 불안정한 위치로 삶의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삶의 맥락이 촘촘하게 얽혀있는 난임이 단지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의료의 범주로 환원될 때 난임 문제는 빙산의 일각만 드러날 우려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난임 여성으로 산다는 것


불임 혹은 난임의 의학적 정의는 전 세계적으로 같지만, 난임 여성이 겪는 경험은 사회마다 크게 다릅니다. 문화, 종교, 정치, 경제적 요인에 따라 난임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재구성되기 때문인데요. 2000년대 들어 의료인류학자들은 난임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문화적 인자를 활발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출산의 가치와 역할이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난임으로 겪는 고통과 불이익이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예를 들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의 영향이 뿌리 깊은 이스라엘이나, 후손을 많이 남기는 것이 중요한 가치인 이슬람 문화권에서 난임은 여성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난임 여성은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이중의 고통을 겪는 것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난임의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불임이 칠거지악의 하나였던 차별적 관습은 사라졌다 해도 여전히 유교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압박은 남아 있습니다. 부부와 아이로 구성된 가족 중심의 문화도 강조되고요. 결국, 난임 여성들의 아픔은 커지고 난임의 의료화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난임이 치료해야 할 질병인지는 다음 칼럼에서 생식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인자를 살펴본 후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난임이 그저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된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난임 여성의 임신을 도울 때 몸의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건강과 난임을 구성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난임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드러내고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함께 살필 때 난임이라는 잠시의 경험, 어두운 터널을 좀 더 힘차게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현주의 여성의학: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헬스데이뉴스 칼럼 http://www.healthda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