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주의 여성의학 (12)
월경을 하는, 혹은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인위적인 중단, 건강 위협 무릅써야”
나에게 월경은 무엇인가요? ‘귀찮지만 숙명 같은 것’, ‘하면 불편해도 안 하면 왠지 걱정스럽고 서운한 것’…···. 최근 영국의 한 일간지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인위적으로 월경을 중단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전했습니다. ‘월경 없는 삶’, 아마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달콤한 상상입니다. 아프리카, 스코틀랜드, 네덜란드 연구에서도 여성의 1/3 정도는 ‘월경은 그냥 3개월에 한 번쯤 하면 좋겠다’고 했고, 29~37%의 여성은 ‘안 하는 게 좋다’고 답했습니다.
여자가 매달 힘들게 월경을 하는 이유
모든 영장류 동물이 월경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혈을 동반한 주기적인 월경은 원숭이, 몇몇 대형 유인원, 인간 여성에게 국한된 특이한 현상이지요. 한 달에 한 번씩, 약 30mL의 혈액과 조직, 철 등 영양분을 손실하는 월경. 허약한 여성이라면 생존에 불리할 수도 있는데 왜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 여성은 꾸준히 월경을 하는 걸까요?
진화인류학자들은 이 의문에 대한 몇 가지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1993년 마지 프로펫(Margie Profet)은 월경혈이 정자를 타고 들어오는 병균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며 ‘병원균 제거’ 가설을 주장했는데요. 월경혈에는 혈액응고인자가 없어 깨끗하게 자궁내막을 탈락시키면서 기계적으로 병균을 제거하고 백혈구를 자궁내막 조직에 공급하면서 면역학적으로 방어기전을 작동시킨다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설은 얼마 가지 않아 비벌리 스트라스만(Beverly Strassman)에 의해 조목조목 반박됐습니다. 첫째, 월경혈이 병균 방어 작용을 한다면 월경 후에 감염이 적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출혈이 감염 위험을 높이는 환경이 된다는 점. 둘째, ‘생식의 창(fertile window)’이라고 불리는 배란기에 주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데 월경까지의 기간이 너무 길다는 점. 셋째, 난교를 하는 동물은 감염 위험이 크기 때문에 병균 방어를 위해 자주 월경을 하는 것이 유리할 텐데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월경을 하는 것은 단지 임신 준비를 위해 두꺼워진 내막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 비용보다 매달 월경 후 새로운 내막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외에도 결함이 있는 배아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는 주장, 생식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라는 주장 등 월경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었습니다.
월경을 억제하는 경구피임약
이처럼 ‘부산물로의 월경’과 ‘유익한 목적을 가진 월경’이라는 주장이 맞서며, 일부에서는 월경을 억제하는 경구피임약이 건강에 이롭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여성들은 잦은 임신과 긴 모유 수유 기간으로 월경을 드물게 했는데, 현대 여성들이 매달 월경을 하는 것은 진화된 몸과의 부조화(mismatch)이기 때문에 월경을 억제하는 것이 순리라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생물인류학자 리넷 시버트(Lynnette Sievert)는 임신 중 월경 중단은 과다한 에스트로겐 때문이고 수유 중 월경 억제는 낮은 수치의 에스트로겐에 의해서인데, 판매되는 월경 억제 경구피임약은 전혀 다른 성분으로 작동하여 구석기 여성의 호르몬 상태를 흉내 낼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건강의 지표인 월경을 인위적으로 중단했을 때
한의학에서 월경은 여성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여성이 건강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월경의 이상이 나타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여성의 건강을 살필 때 월경에 대한 문진은 육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월경 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월경량이 너무 많거나 적거나, 월경통이 심하다면 질병이 심각해지기 전에 조기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월경을 인위적으로 억제하거나 호르몬제로 조절한다면 월경의 변화를 통한 건강 시그널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최근 30대 초반의 여성이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결혼 후 여러 사정으로 3년간 피임약을 복용하다가 임신을 계획하고 약물 복용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무월경 상태가 지속되었고 정밀검사 후 ‘조기폐경’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진단을 받았습니다. 호르몬제 복용 대신 스스로 월경을 하였더라면 월경의 변화로 난소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는 신호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습니다.
초경부터 완경까지 약 450번의 월경을 하는 현대 여성들이 편하게 월경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월경 기간에는 충분히 쉴 수 있고, 월경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편리한 월경 용품을 사용할 수 있다면 ‘건강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월경을 억제하는 일은 없을 텐데요. 문득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의 책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 떠오르네요.
▲움여성한의원 문현주 원장
* <헬스데이뉴스>에 여성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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