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2월호] 불규칙한 월경과 함께 찾아오는 갱년기
*<전원생활> 2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불규칙한 월경과 함께 찾아오는 갱년기
운동과 블랙푸드로 심신을 다스리자
갱년기는 중년 여성이 맞는 가장 중요한
인생의 변곡점이다. 임신하고 출산하고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고, 또는 청춘을 바쳐 일하다가
이제 겨우 한숨 돌리려는데 갑자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갱년기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불규칙한 월경이다.
이때부터 운동과 음식을 통해 몸을 관리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글 문현주(움여성한의원장)
월경을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시작하거나, 몇 개월씩 월경을 거르거나 양이 많았다가 적었다가 들쑥날쑥하면 갱년기에 진입을 시작했다는 신호다. 불규칙한 월경을 몇 년간 지속하다가 마지막 월경을 하고 일 년이 지나면 비로소 ‘완경’이라고 진단한다. 보통 폐경(Menopause,)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문을 닫았다’, ‘여자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요즘은 ‘과제를 마치며 완수했다’는 의미의 ‘완경(完經)’이라는 말을 대신 쓴다.
완경 나이는 민족에 따라 다르고 개인 차이도 있다. 서구여성들은 흔히 쉰 살이 넘어도 월경을 하지만 저개발 국가의 여성은 대부분 40대 중반이면 월경을 마친다.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더라도 생활환경에 따라 완경 연령은 달라진다. 영국의 의료인류학자 질리언 벤틀리 박사의 연구 결과 완경 시기는 초경 전에 영국으로 이주한 방글라데시 여성은 영국 여성과 비슷한 50대 초반이었지만, 초경 이후 영국으로 이주한 방글라데시 여성은 방글라데시에 계속 살았던 여성처럼 40대였다.
40대 중반부터 갱년기 대비해야
이 같은 결과는 성장하고 생식하는 데 제한된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여성의 몸이 어린 시절에 질병과 감염, 영양결핍 등으로 에너지 부족을 겪게 되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생식기능에 에너지를 적게 분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완경 연령은 약 50세다. 갱년기는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완경으로 진행하는 2-8년간의 완경이행기와 완경 후 1-4년간의 완경 후기를 포함하므로 40대 중반부터 갱년기를 슬슬 대비해야 한다.
“선생님, 저도 갱년기인가요?”
30대 중반에 난임으로 치료를 받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 수진씨가 10년 만에 다시 진료실을 찾아왔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자신보다는 가족을 돌보며 살았는데 갑자기 몸이 이상해져서 화들짝 놀랐다며 한꺼번에 나타난 증상을 늘어놓았다.
임신을 손꼽아 기다릴 때는 매달 꼬박꼬박 하던 월경이 싫기도 했지만 출산 이후 신경 안 써도 제때 하던 월경이 20일 만에 갑자기 나타나거나 두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얼굴은 갑자기 붉게 달아오르고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저녁이 되면 추웠다 더웠다 하며 잠자기가 어려웠다고 호소했다. 몸은 여기저기 쑤시는 것처럼 아프고 상처가 나도 잘 아물지 않으며 깜박깜박하는 건망증 때문에 우울감도 심해졌다고 한다.
안면홍조 증상 원인은 여성호르몬 분비량 변화
불규칙한 월경과 함께 나타나는 갱년기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갱년기의 특징으로 알려진 안면홍조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혈관 운동 증상이다. 이는 말초 혈관이 갑자기 확장됐다가 수축되는 자율신경의 불균형 때문에 발생합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진땀이 나며 불면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갱년기 여성 모두에게 혈관 운동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은 서양 여성은 갱년기에 여성호르몬 수치가 급격하게 감소하니 혈관 운동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동양 여성은 그렇지 않다.
일본에서 연구를 진행한 인류학자 마거릿 로크 박사는 일본 여성이 호소하는 대표적인 갱년기 증상으로 통증, 피로감, 무기력 등을 꼽았다. 필자의 병원에서도 생활환경의 변화로 몸이 서구화되면서 급성 에스트로겐 부족 증상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지만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거나 ‘피곤하고 무기력하다’는 갱년기 여성의 고통 자주 듣는다.
급성으로 나타나는 증상 외에도 갱년기에는 비뇨 생식기계가 약해져 소변을 자주 보거나 요실금, 질 건조증, 성교통, 위축성 질염 등이 자주 발생한다. 이와함께 완경 이후에는 몸의 대사가 느려져 비만, 특히 복부비만이 나타난다. 또 심혈관 질환, 골다공증 등의 위험이 커지므로 장기적으로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5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
갱년기는 여성 생애주기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며, 인생 후반기의 건강과 삶의 질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다. 어떻게 갱년기 건강관리를 해야 할까. 갱년기와 완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일까. 그렇지 않다. 갱년기는 사고 보통 여성이라면 50대에 누구나 겪는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때가 되면 사춘기를 겪듯, 수십 년간 매달 난자를 키워 배란하던 난소가 임무를 완수하고 휴식기에 들어가는 여성의 정상적인 발달과정의 일부다. 반드시 치료해야하는 ‘여성호르몬 결핍질환’이 아니라 성숙한 여성이 겪고 넘어가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한때 갱년기 호르몬대체요법이 젊음을 유지하는 마법의 묘약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2002년 미국국립보건원의 대규모 임상연구 결과 이 같은 분위기는 바뀌었다. 완경 이후 에스트로겐-프로게스틴 복합 호르몬 요법을 받은 여성이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은 여성보다 유방암, 심장병 발병 위험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호르몬 대체요법이 난소암, 유방암과 같은 여성호르몬 관련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암을 조기 진단해 어느 정도 예방 치료할 수 있고, 생명에 위협적인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 위험보다는 이득이 크다는 것이 호르몬 대체요법 찬성론자의 주장이었다. 결국 미국국립보건원은 ‘호르몬제 장기복용을 하지 말 것’을 권고하며 7년으로 계획했던 연구를 3년 앞당겨 중단했다. 물론 에스트로겐 부족 증상으로 일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정도라면 단기간 호르몬제 복용을 고려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자궁근종이 있거나 유방암, 심장병 고위험군이라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장부 기능 보강하고 한열의 균형 바로잡아
한의학에서는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는 대신 허약한 장부의 기능을 보강하고 한열寒熱의 균형을 바로잡는 치료를 통해 갱년기를 순조롭게 넘기고 완경 이후 건강관리에 대비하도록 돕고 있다. 예로부터 한의서에는 ‘머리는 서늘하면 병이 없고(頭無冷痛), 배는 따뜻하면 병이 없다(腹無熱痛)’는 인체 생리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갱년기에 나타나는 상열감이나 안면홍조는 이와는 반대로 열이 위로 올라간 ‘상열하한上熱下寒’, ‘음허화왕陰虛火旺’의 병리다.
열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진액이 부족해 발생한 가짜 열이기 때문에 찬 약으로 억지로 열을 끌 것이 아니라 허약한 진액을 보충하고 자궁, 난소가 위치한 하초下焦의 기운을 북돋아 위로 올라간 열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 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개인마다 체질이 다르고 장부의 강약에 차이가 있으므로 몸 상태를 고려한 맞춤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카더라’는 말만 믿고 갱년기에 좋다는 약을 정확한 진단과 처방 없이 복용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잘못 먹은 한약은 독이 될 수 있다.
좋은 약재라도 함부로 먹는 것은 금물
한때 갱년기 여성들 사이에 명약으로 알려진 ‘백수오’가 90% 가짜라고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해 세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던 제품이 백수오 대신 겉모습이 비슷하지만 간독성, 신경쇠약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므로 식품 원료로 사용이 금지된 이엽우피소를 첨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지만 진짜 백수오라고 해도 음식을 먹듯 함부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백수오는 한의학적으로 생식 기능을 주관하는 신기능을 강화하고 피를 건강하게 하며 자양강장의 효과가 있는 약재다.
이에 따라 갱년기 장애나 난소 기능 저하에 처방할 수 있지만 체질이나 증상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여성호르몬의 균형을 깨뜨려 이상출혈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자궁내막증식증, 자궁근종, 유방종양 등이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보약처럼 여겨지는 홍삼도 주성분인 진세노사이드가 여성호르몬 유사 작용이 있어 에스트로겐 의존성 종양이 있거나 질 출혈이 있는 경우 복용하지 않는게 좋다.
견과류는 생명의 정수를 품은 건강식
갱년기를 건강하게 넘기려면 평소 몸을 아끼고 잘 돌봐야 한다. 가족에게 쏟았던 에너지를 이제 자신에게 돌리고 몸에 좋은 음식은 먼저 챙겨 먹자. 검은쌀, 검은콩, 검은깨와 같은 이른바 ‘블랙 푸드’는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면서 ‘흑색黑色’이 우리 몸의 근본 에너지인 신기능을 돕는다는 한의학적 이론과도 들어맞는다. 좋은 기름을 많이 함유해 노화 방지 음식으로 꼽히는 견과류 씨앗도 한의학에서는 생명의 정수를 품은 음식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마토, 브로콜리, 블루베리 등 항산화 물질을 많이 함유한 음식은 몸에 쌓인 피로 물질을 빨리 제거하므로 갱년기 건강관리에 도움이 된다. 또 뼈와 근육이 약해지는 노후를 대비해 즐겁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골라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특히 햇볕을 쬐며 할 수 있는 야외운동은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D 합성에 도움이 될뿐 아니라 우울감 해소 효과가 있다.
갱년기는 정신없이 발끝만 보고 걷다가 이제 겨우 한숨 돌리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계획하는 산 중턱에 해당한다. 100세 시대에 마라톤에 비유하면 겨우 반환점에 이르렀을 뿐이다. 갑자기 나타난 몸과 마음의 변화에 놀라지 말고 스스로 토닥토닥 격려하고 잘 돌봐야 한다. 새로운 생애 주기에 진입하는 자신의 건강을 점검하며 신발끈을 단단히 매고 걷는다면 인생 후반기는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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