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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나 우울해” 소리내어 말하기-여성우울증, 몸과 마음 그리고 사회적 돌봄이 함께 해야

by 움이야기 2012. 4. 3.


<문현주 원장의 여성건강 365일>

 

“나 우울해” 소리내어 말하기

여성우울증, 몸과 마음 그리고 사회적 돌봄이 함께 해야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53091

 

 

무겁고 추운 겨울의 끝자락이 유난히 긴 삼월이었지만 그래도 반짝이는 햇살을 보면 어김없이 봄은 오는구나 싶습니다. 침잠해 있던 우리의 마음도 긴 터널을 지나 이렇게 밝음과 만나면 좋을 텐데요.

하지만 봄이 와도 해가 떠도 꽃이 피어도 여전히 깊은 우울 속을 헤매는 많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아픔, 슬픔, 우울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별다른 이유도 없는데 무기력, 피로감, 우울, 불면이 계속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땐 그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것처럼 우울증은 잠시 왔다가 지나가기도 하지만, 최악의 경우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더 우울한 이유

 



여성의 우울증 빈도는 남성에 비해 1.5-2.5배 가량 높은데요. 이는 매달 월경을 하면서 여성호르몬의 변화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함께 임신, 출산, 갱년기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생애 최초로 만나는 우울의 감정은 초경의 시작과 함께 찾아오는데 바로 월경 전 증후군(PMS) 때문입니다. 여성의 월경주기는 배란일을 기준으로 에스트로겐이 지배하는 배란 전기와 프로게스테론이 지배하는 배란 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트로겐이 활발히 분비되는 배란 전기에는 전반적으로 기분도 좋고 마음도 활기를 띠지만, 배란 이후 프로게스테론이 주로 분비되는 시기에는 기운이 가라앉으면서 주로 나의 내면을 향하게 됩니다.

 

마냥 기쁘기만 할 것 같은 임신 기간에도 열 명 중 한 명이 우울증을 호소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호르몬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잊을만하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산후우울증’입니다. 산후우울증은 여성 자신만의 우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혹 영아 유기나 위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로 표출됩니다. 출산 후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 온 몸이 해체되는 듯한 출산의 고통,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으로 대부분의 여성들은 ‘베이비 블루(baby blue)’라고 하는 산후 우울감을 느낍니다. 저 역시 출산 후 거울을 보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칙칙한 얼굴색, 펑퍼짐하게 변한 몸매에 심한 우울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한 우울감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대부분 회복되지만 약 15% 정도는 지속되는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또 한번의 마음의 위기는 갱년기에 찾아옵니다. 삼십 년 넘게 하던 월경이 끊어지면서 홀가분함 대신 허전함을 느끼고 심지어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났다’는 절망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호르몬의 감소는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한 감정의 기복으로만 나타나는 건 아닌데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상열감,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관절통 등 신체증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갱년기의 몸과 마음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여기에 한평생 마음을 쏟고 품었던 자식들이 성장해 떠나면서 느끼는 ‘빈둥지증후군’은 갱년기 우울증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우울증 치료

 

한의학에서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심신일원론(心身一元論)을 바탕으로 우울증을 치료합니다. 월경 전, 임신 중, 출산 후, 그리고 갱년기에 심혈(心血)이 허약해지면서 마음을 주관하는 신(神)이 제자리를 지키기 못해 생기는 우울증에는 심혈을 보강해줍니다. 쓸데없는 생각이 많고 걱정이 지나치면서 비(脾)의 기운을 상하게 해 생기는 우울과 불면에는 비장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요.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간(肝) 경락의 기운이 막혔을 때는 이를 소통시켜주는 치료로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줍니다. 이처럼 몸이 건강해지면서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고, 마음이 건강해지면서 몸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늘 기분 좋고 행복하면 좋겠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울은 언제나 별 기척도 없이 불현듯 내 곁에 찾아옵니다. 오는 우울을 막을 수는 없지만, 우울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아, 우울이 또 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상황이 변하지는 않더라도 이완호흡으로 내 몸에 산소가 충분히 들어오면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자율신경계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햇빛이 부족한 북유럽 지역에 우울증 환자가 많고 겨울철에 출산한 산모에서 산후우울증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햇빛을 쬐는 것도 우울증을 극복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햇빛은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주요 신경 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하면서 우울감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우울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우울의 감정은 죄악도 부끄러운 것도 아닌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느낌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나 우울해”라고 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의 반은 덜어낼 수 있으며 토킹 테라피(talking therapy), 즉 ‘수다로 푸는 것’이 가벼운 우울증의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울증은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내 내면의 외침이기도 합니다. 이를 무시하지 말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잘 보듬어 준다면 오히려 귀한 성찰의 시간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시대의 질병, 우울증…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 철학자는 우울증의 증가는 끝없이 채찍질되는 ‘성과에 대한 압박’, 노력하면 불가능이 없다고 속삭이는 ‘성과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시대의 질병이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울증의 극복이 단지 개인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업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을 함께 살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한국 여성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우울증의 문제를 호르몬의 급격한 변동 때문이라고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유독 심각하게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집중되는 육아부담, 출산과 육아로 단절되는 커리어,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도 함께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1180호 [건강] (2012-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