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주의 여성의학 움 이야기 (6)
생식건강을 위해, 어떻게 일해야 할까?
“자연 리듬에 맞춘 적절한 노동환경을”
동이 트자마자 두 자매가 먼 길을 나섭니다.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젖먹이 아이는 옆구리에 꼭 매달았습니다. 한 시간 반을 걸어 들판에 도착한 여인들은 콩과 나물, 나무뿌리를 바구니에 담고, 덩굴에서 딸기를 따고 나무의 수액을 채집합니다. 바구니에 수확물이 가득 차자, 오늘의 노동을 끝내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휴식을 취합니다. 한쪽에는 먹거리가 가득한 바구니를, 한쪽에는 젖먹이 아이를 매고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마을로 돌아갑니다.
여성의 몸과 맞지 않는 지금의 노동 환경
인류학자 이튼(Eaton) 등이 아프리카 !쿵(!Kung) 족의 일상을 관찰하며 쓴 현장 기록의 일부입니다. 인류학자들은 세계 각지의 전통부족 연구를 통해 인류 조상의 삶의 방식을 유추하였는데요. 남성들이 ‘사냥꾼’의 역할을 했다면, 여성들은 ‘채집자’로서 가정 경제에 기여하였습니다. 원시시대 여성의 노동 방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 먼 거리를 걷고, 그날 거둔 수확물을 집으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근력, 지구력이 필요하다. 둘째, 일주일에 며칠만,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유연한 노동이다. 셋째, 해가 떠 있는 동안만 일한다.’ 진화의 역사 대부분 시간을 이렇게 일해왔던 여성의 몸은 지금의 새로운 노동 환경이 낯설기만 합니다. 이 불일치(mismatch)가 해치는 여성의 건강을 살펴보겠습니다.
앉아서, 너무 오래, 야근과 교대근무까지
현대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보냅니다. 자동차로 출근하고 종일 책상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퇴근해서는 텔레비전 앞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많은 연구가 현대인의 오래 앉아있는 생활양식이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오래 앉아있을수록 심혈관계 질환, 2형 당뇨병, 암 발생률 등이 증가할 뿐 아니라 하루 7시간 이상 앉아있는 경우 추가 한 시간당 조기 사망률이 5% 증가한다고 하니 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오래 앉아있는 남성의 경우 고환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정자의 질이 떨어집니다. 움직이지 않는 현대인의 고질병, 비만은 생식 연령 여성에게 다낭성난소증후군 등 대사 이상의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많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쉴 새 없이 일하는 현대인의 과도한 노동 또한 건강을 해칩니다. 특히, 여성의 생식 건강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인류학자들은 피임하지 않는 부족들이 계절에 따라 출산율이 다른 것에 주목하고, 노동 강도와 생식 기능의 관계를 연구하였습니다. 히말라야 산간에 사는 타망(Tamang) 족 여성의 경우 농사와 목축의 강도가 높은 몬순 시기에 배란성 월경 비율이 낮고 황체기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현저히 저하되었습니다. 폴란드 연구에서도 노동량이 많은 여름철에 여성의 난소 기능이 약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수도를 설치한 후 여성이 무거운 물을 나르는 일을 중단하면서 매달 임신율이 3배 이상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노동시간과 일의 강도뿐 아닙니다. 밤낮 구분 없이 일하는 근무 형태, 즉 야근과 교대 근무는 여성의 생식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합니다. 여러 연구에서 밤낮이 바뀌는 생활이 생체 시계를 교란하며 고혈당, 복부비만, 대사증후군 등의 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대근무 여성에서 난임 위험이 80%나 높고, 월경불순, 유산의 위험이 현저히 크며, 야간 근무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이 40%나 높다고 최신 연구 결과는 밝히고 있습니다.
과도한 운동이 임신을 방해하기도
우리 몸이 익숙한 석기시대 수렵자 여성들의 생활방식을 고려한다면 많이 걷는 유산소 운동, 무거운 바구니 운반과 비슷한 웨이트 트레이닝은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임신을 준비한다고 갑작스럽게 무리한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해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운동이 난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뉴잉글랜드 여름캠프에서는 운동프로그램에 참가한 여성들의 난소 호르몬 변화를 살펴보았습니다.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여 체중 감량이 없도록 하였는데도 5주 동안 하루 6.5km에서 16km 달리기를 하면서 난소 호르몬 분비가 눈에 띄게 억제되었습니다. 운동이 너무 과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다른 연구에서 일주일에 20km 정도를 달리는 가벼운 운동이 난소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는데요. 이 경우도 착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현저하게 감소하였습니다.
물론, 이 결과를 가지고 ‘운동이 임신에 해롭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비약입니다. 적절한 운동이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명백하지요. 그러나 과로, 영양부족, 정신적 피로 등 복합 스트레스에 과도한 운동까지 겹친다면 난소 기능 저하로 오히려 임신에 방해될 수도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인류 미래를 희망한다면
몸을 많이 움직이고 자연의 리듬에 맞춰 스스로 시간과 강도를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노동은 인류가 가장 익숙한 오랜 삶의 방식입니다. OECD 최저의 출산율, 최장의 노동 시간을 기록하는 우리 사회에서 참고해야 할 지향점이기도 합니다. 여성의 생식 건강을 생각하고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넘어 지속 가능한 인류의 미래를 희망한다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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