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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움여성한의원 칼럼] ‘공공장소 모유수유’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

by 움이야기 2016. 4. 11.

<헬스데이뉴스>에 연재하는 '문현주의 여성의학, 움이야기' 열여덟 번째 칼럼입니다.


문현주의 여성의학(18)


‘공공장소 모유수유’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

“모유수유를 방해하는 사회적 환경 바꿔야”



버니 샌더스 대선 캠페인에서 모유수유를 하며 연설에 환호하는 마거릿 엘런 브래드포드



얼마 전 미국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유세장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환호하는 여성의 사진 한 장이 인터넷상에서 널리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공공장소에서의 모유수유’에 대한 찬반 논란을 일으켰고 정치적 쟁점으로 이어졌지요. “제대로 된 사회라면,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하는 여성들을 결코 낙인 찍지 말아야 한다.”는 샌더스의 발언이 공공장소 모유수유를 ‘역겹다’고 표현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비교되기도 하면서요.


아이의 몸과 마음을 위한 건강한 자양분, 모유



모유가 아이를 위한 최고의 음식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공장에서 분유가 대량 제조되기 전까지 엄마 젖은 무기력하게 태어난 아이를 키워내는 유일한 에너지원이었으니까요. 엄마 없는 심청이를 키워낸 것도 동네 아낙들의 동냥젖이었고요. 지금이야 가까운 동네 마트만 가도 다양한 종류의 분유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으니 모유가 없더라도 굶을 걱정은 없는데요. 하지만 인공적으로 제조된 분유가 엄마 젖의 우수성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모유에는 아이가 자라는 데 필요한 각종 영양소와 함께 면역력을 높여주는 물질이 많이 들어있어 세상에 막 나와 낯선 병원균과 맞서야 하는 어린 아기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데는 최적의 음식이죠. 


그뿐 아닙니다. 아무리 비싼 프리미엄 분유라도 따라올 수 없는 모유만의 우수성이 있는데요. 바로 아기의 성장 단계에 따라 성분이 달라지는 내 아이의 ‘맞춤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다가불포화지방산은 뇌 발달에 아주 중요한 영양소이지만 임신 말기에 주로 축적되기 때문에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난 조산아에게는 부족하기 쉬운데요. 놀랍게도 조산아를 분만한 엄마의 젖에는 만삭 분만 산모보다 이 지방산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덕분에 아기는 선천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지요.


모유는 단지 아이의 몸만 자라게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도 건강한 자양분이 됩니다.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는 힘들지만, 엄마 젖을 먹고 자라는 아이는 밤낮없이 엄마와 붙어 지내고 엄마 품에 안겨 살을 비비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게 되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깊은 유대감은 아이가 평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단단한 마음의 힘이 되고요.


사회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모유수유 비율


이처럼 모유가 아이에게 좋다는 걸 모르는 엄마는 없습니다.  ‘내 아이에게는 가장 좋은 것만 먹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부분 임산부는 출산 후 모유로 아이를 키울 계획을 하고 있고요. 하지만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산모가 얼마 먹이지도 못하고 중도에 모유수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젖이 부족해서’, ‘젖몸살 때문에’ 등 개인적인 몸의 사정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모유수유를 지속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도 한몫합니다. 


여러 인류학적 연구는 가난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취약 계층에서 모유수유를 지속하는 비율이 낮고, 또한 모유수유를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시선에 따라 그 사회의 모유수유 비율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데 외출 중에 젖 한번 먹이려고 후미진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면, 일하다 모유를 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제대로 확보되어 있지 않다면 출산한 여성들이 처음에 계획한 대로 오랫동안 모유수유를 할 수 있을까요.


미국 유타주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다가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결국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최근 영국의 여성의원들이 국회의사당 안에서 수유를 허용할 것을 요구했는데 지지부진한 상태고요.


‘먹고 살기 힘든데 정치가 무슨 상관이냐’ 할지 모르지만 사실 정치는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공공 모유수유, 낙태 합법화 등에 대해 미국 양 당의 의견이 첨예하게 다른 것처럼요. 멀리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말에 통과된 난임 치료를 의료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하는 법안이나 최근 시행된 임산부의 임금 감소 없는 근무시간 단축 등도 모두 정치의 결과니까요.


이제 곧 나라의 일꾼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됩니다.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나의 건강, 가족의 건강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세요.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내 삶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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