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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터널>, 우리는 구조될 수 있을까?

by 움이야기 2016. 8. 17.


1994년 저는 성수대교를 마주하는 강 북쪽 동네인 응봉동에 살았습니다.

대학생이었지만 한약 분쟁으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서 빨간 애마 '프라이드'를 타고 뻔질나게 다리를 건너다녔던 시기죠.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강을 건널 때마다 차가 흔들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작은 차라 강바람에 흔들리는 건가?' 몇 번 이상하다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어느 날 그 다리가 무너진 거죠. 바로 전날에도 그 다리를 건넜는데 '하마터면···' 하는 생각으로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그다음 해에는 강남에 있던 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오랜만에 쇼핑하고 친구 선물 사고 저녁 준비를 위해 장 보던, 그렇게 일상을 살던 502명의 사람이 어이없이 와르르 무너진 백화점 건물 아래 깔려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을 태우고 제주로 가던 배는 가라앉아 여전히 바닷속에 있습니다.


재난은 이렇게 어느 날 문득, 참 어이없이 일어납니다. 영화 <터널> 속 주인공 정수도 그랬지요. 



자동차 딜러로 큰 계약을 성사시키고, 마침 딸 아이의 생일이라 생크림 케이크 하나 옆에 싣고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개통한 지 한 달 밖에 안된 터널이 무너지다니요. 처음에는 암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휴대폰으로 119구조대와 통화를 해서 '곧 구하러 간다'는 약속을 받았으니까요. 다행히 차 안에는 물 몇 병과 비상식량도 있었고요. 그런데 구조는 난항에 빠집니다. 워낙 부실 공사라 제대로 된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웠지요. 


이 와중에 사진 찍겠다고 와서 구조를 방해하는 정치인들, 희생자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극적인 기사만 내려 하는 '기레기' 기자들, '구조작업 때문에 잃고 있는 경제적 손실이 얼마냐'며 희생자 가족을 오히려 이기주의자로 모는 사람들···. 잠깐, 이거 영화 맞나요? 어디서 자주 보던 모습들인데···.


과연 터널 속에 갇힌 사람(들)은 무사히 구조될 수 있을까요? 살아서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유독 우리나라에서 부실공사, 불법운행으로 어이없는 재난이 계속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요? 무고한 희생과 비극을 겪으면서도 제대로 된 반성과 교훈 없이 너무 쉽게 이를 잊어버렸기 때문이죠.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월호 리본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대단한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소심함과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어영부영 넘어가다가는 다음엔 내 차례일 수 있다는 불안감,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서요.


너무 현실적이어서 공포스러운, 무더위가 싹 가시는 영화 <터널>을 8월의 영화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