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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잘 낳는 것’ 만큼 ‘잘 회복해야’ 산후조리, 여성의 평생건강 좌우할 수도

by 움이야기 2012. 4. 16.

‘잘 낳는 것’ 만큼 ‘잘 회복해야’
산후조리, 여성의 평생건강 좌우할 수도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신성한 과정, 출산

지금은 보기 힘든 풍경이지만, 어렸을 적만 해도 대문 앞에 걸린 금줄을 보고 ‘아기가 태어났구나’ 하고 알아채던 정겨운 풍습이 있었습니다.


새끼를 꼬아 숯, 고추, 솔잎 등을 매달아 놓은 금줄은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림과 동시에 아이와 산모가 있는 곳을 ‘신성한 공간’으로 선포하는 엄숙한 의례이기도 했는데요. 숯과 고추는 성별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음(陰)의 색인 숯으로 잡귀를 흡수하고, 양(陽)의 색인 붉은 고추로 악귀를 내쫓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평소에는 오른쪽으로 꼬던 새끼줄을 왼쪽으로 꼬아놓았기 때문에 악귀가 이를 풀지 못하고 도망간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금줄이 쳐 있는 삼칠일 동안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산모와 아기의 면역력이 가장 약한 시기에 외부로부터의 감염을 막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가족들도 금줄 밑을 지나며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니 한 생명을 맞는 정성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처럼 생명탄생의 과정은 매우 중요한 의식임과 동시에 이를 실제 담당하는 출산은 여성들이 일생에서 경험하는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입니다. 열 달 동안 품고 있던 아기를 세상에 내어놓는 분만의 과정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진통과 뼈와 살이 해체되는 듯한 아픔 후에 만나는 희열이며, ‘엄마’라는 새로운 여성으로 재탄생하는 의미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출산의 과정만큼 중요한 여성의 산후조리


그런데 여성에게는 이러한 출산의 과정만큼 출산 후 몸과 마음의 건강한 회복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이를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간혹 예순을 넘긴 어르신들 중에도 “내가 산후조리를 못해서 몸이 평생 아파”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급격한 호르몬의 변동을 겪는 출산 후 조리와 건강한 회복은 여성의 평생건강을 좌우한다 할 만큼 중요한 과정입니다.


한의학적으로 산후병은 ‘다어(多瘀)와 다허(多虛)’, 즉 어혈이라고 하는 나쁜 피의 정체와 기혈(氣血)의 허약함으로 생깁니다. 출산 후 어혈이 정체하면 복통이 지속되면서 몸도 많이 붓게 되는데 이 때문에 출산 후에는 바로 몸을 보하기 보다는 오로 배출을 원활하게 하고 어혈을 제거해주는 치료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이후 산후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은 기본적으로 기혈의 허약함 때문에 발생합니다. 산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증상 중 하나인 ‘산후풍(産後風)’도 관절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뼈를 튼튼하게 해 주는 피가 허약한 상태에서 관절을 무리하게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것이지요. 이전에는 시집살이로 출산 직후부터 무리하게 집안일, 농사일을 하면서 산후풍이 주로 나타났다면, 최근에는 컴퓨터 사용을 많이 하면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픈 산후관절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산후에 나타나는 여러 증상 중에서도 구토, 도한, 설사를 ‘산후삼급(産後三急)’이라 하여 가장 위급한 증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음식물을 토하거나 밤에 자다가 땀을 흠뻑 흘리고 설사를 계속하게 되면 몸의 진액이 고갈되면서 허증이 더욱 심해집니다. 이로 인해 모유량이 부족해지고 어지럽고 기운이 없으면서 뼈와 관절도 더 약해질 수 있습니다. 출산을 하고 처음 며칠간은 노폐물 배출을 위해 생리적으로 땀 배출이 증가하지만, 출산 후 일부러 땀을 과도하게 빼는 것은 진액손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금해야 합니다.


음식물 섭취도 주의가 많이 필요한 부분인데요. 대부분 잘 알고 있듯이 미역국은 피를 맑게 해주는 작용이 있어 출산 후 산모에게 최고의 음식으로 꼽힙니다. 반면에 종종 산후보양식으로 등장하는 가물치는 기름기가 많아 창상이 있는 경우 잘 아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회음부 절개나 제왕절개를 한 산모의 경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출산 후 단골메뉴 중 하나인 호박도 몸을 보하는 음식이라기 보다는 출산직후 먹으면 오히려 기운이 빠질 수 있고 산후 한 달이 지나서도 잘 안 빠지는 부종, 특히 소변불리와 동반된 부종에 한해서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산후에는 기름기가 많은 곰국보다는 살코기 위주로 단백질 섭취를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찬 음식의 경우는 오로 배출을 방해하고 어혈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과일의 경우 냉기를 제거하고 야채는 데쳐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산모의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돕는 것, 모두가 함께 해야


예전 대가족 사회에서는 여럿이 돌아가며 아기를 돌볼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산모의 육아부담을 덜 수도 있었습니다. 반면 요즘은 돌봐줄 가까운 어른도 귀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으려면 비용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약 이 주간의 산후조리원 조리가 끝난 후에는 산모와 아기만 홀로 남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출산 후의 몸 상태가 임신 전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약 6-8주간의 충분한 산욕기가 필요합니다. 안 그래도 출산 후 호르몬의 변화로 우울감이 쉽게 나타나는 시기인데 몸도 완전하지 않은 채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외로움과 부담감은 산후우울증을 더욱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심혈(心血)을 보하는 치료로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돕습니다. 그러나 산모의 조리를 도와주고 함께하는 양육자로 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배우자에게도 충분한 출산휴가가 보장된다면 산후우울증 예방에 효과적인 도움이 됩니다.


출산은 가장 개인적인 사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사회 구성원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함께 축하하고 함께 축복하며 금줄을 치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산모의 몸과 마음을 돌본다면 출산하는 모든 여성들이 건강하고 씩씩한 엄마로 힘찬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입니다.


1182호 [건강] (2012-04-16)

문현주 / 움여성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