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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핑크 리본 주식회사>, 유방암 캠페인의 민 낯을 보다

by 움이야기 2012. 4. 25.

서울국제 여성영화제가 올해로 벌써 열 네번째입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영화제인데, 갈수록 마음만큼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아쉬움..

 

어제 진료를 쉬면서 신촌으로 달려갔습니다. 바로 이 영화, <핑크 리본 주식회사 Pink Ribbons Inc.>를 보기 위해서였죠.

 

이 영화는 '유방암 퇴치'라는 공익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핑크리본 캠페인'이 어떻게 자본과 결탁하여 상업적 홍보의 장으로 전락했는지, 그 과정에서 실상 소외되는 유방암 환자의 아픔과 고통, 원인규명과 예방은 뒷전에 둔 채 치료제 개발에만 집중되는 기금에 대한 의혹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시작은 유방암 환자의 가족인 한 여성이 '국립암연구소의 예산 중 5%만이 암 예방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살구색 리본이 달린 카드를 나누어주면서 부터였습니다. 이 캠페인이 주목을 받자 한 화장품 회사가 이 리본을 사용한 캠페인을 제안하였고, 할머니는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우려하여 거절하였지만 리본의 색깔이 핑크색으로 바뀌면서 이는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대대적인 캠페인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유방암 환자를 격려하고, 힘내자 하고, 유방암 퇴치를 위해 기금을 모으는 '핑크리본 캠페인'은 매우 공익적입니다.

기업이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자신의 이윤을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우리는 마케팅을 위해서 이용되는 기업 공익사업의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여성 일곱 중 한 명이 걸린다는 유방암의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어떤 암보다도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많은 연구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것이 '환경호르몬'입니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처럼 작용하면서 호르몬계를 교란시키는 이 물질은 '에스트로겐 의존성 암'인 유방암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져있습니다.


그런데 이 '핑크리본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화장품 회사는 화장품에 포함된 성분의 안전성 검사는 소홀히 하고 있으며, 대기오염을 유발하는 자동차 회사 역시 이 캠페인을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몸에 안좋은 패스트푸드를 파는 회사도 '패스트 푸드를 먹을 때마다 핑크리본 캠페인에 기부'하는 마케팅을 시작했다가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지요.

 

'핑크리본 캠페인'을 통해 매 해 어마어마한 기금이 조성되지만 그 기금의 사용내역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은 생존일 수를 몇 일, 몇 주 늘리는 치료제 개발에 집중되었으며, 원인규명과 예방을 위한 연구비 지원은 매우 적은 비율에 불과했습니다.    


조기진단으로 치료와 생존률을 높이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조기진단으로 증가한 유방암 환자, 그만큼 증가한 약물사용으로 수익을 올리는 거대 제약자본.. 암을 유발하는 살충제를 헬리콥터로 뿌리면서 유방암 치료약물을 판매하는 두 얼굴의 기업의 진실을 과연 무엇인지, 영화는 묻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유방암 여성들은 '핑크'의 이미지로 유방암이 별거 아닌 것 처럼, 가볍게 여겨지는 캠페인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밝게, 긍정적으로' 유방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래야한다고, 결국 'survivor(생존자)' 가 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고 여겨지는 상황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힘 때문에 유럽에서는 금지된 성장호르몬제가 미국에서는 여전히 축산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가난하기 때문에 유기농을 먹지 못하고 호르몬교란물질을 함유한 소고기를 먹어야 한다면 인간의 생존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라는 영화속 외침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유방암 뿐 아니라 자궁암,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불임.. 모두 환경호르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 호르몬의 균형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울러 건강한 음식, 건강한 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건강은 인간의 기본권이면서도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이 영화는 의료가 시장의 영역으로 넘어갔을 때, 자본의 힘이 막강할 때 '생명' 조차도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료민영화의 논란 속에 경종을 울려주는 좋은 텍스트가 되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