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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여성마음연구소

난임 여성들의 우울, 사회가 관심 두어야

by 움이야기 2013. 6. 12.

난임여성의 94.5%가 우울증상을 겪고 있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가 기사화되었습니다 (기사보기). 이와 함께 최근에 불임진단을 받은 한 여성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선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립니다. 


스트레스와 임신의 관계는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악순환의 고리와도 같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호르몬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임신이 안되기도 하고, 또한 임신이 안되면서 스트레스는 더욱 심해지는. 그래서 이 고리를 어떻게 끊느냐가 건강한 임신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의학에서는 특히 '간기울결 불임'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로 인해 간경락의 기가 막히고, 이로 인해 혈액공급이 안되면서 자궁, 난소의 기능이 임신에 적합하지 못한 상태가 되는 기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침과 한약으로 이를 치료하기도 하고, 환자분들에게 긴장을 이완시킬 수 있는 여러 테크닉들을 알려드리기도 하지요 (이 블로그의 '마음다스리기'를 참고하세요). 움여성한의원에서는 난임여성들이 겪는 마음의 어려움, 이것이 건강한 임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주목하며 난임여성을 위한 상담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었지요. 


불임과 여성의 재생산에 대한 담론은 2000년대에 들어와 의료인류학자들의 활발한 연구주제가 되었습니다. '불임'의 의미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구성되는지, 그 사회의 문화, 종교, 정치, 경제적 요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재생산 (reproduction)'이라는 같은 문제를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하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저 의료의 영역으로만 규정되던 불임의 문제가 생물학적 경계를 너머 심리적, 사회적 접근이 필요함이 주장되었고, 이 문제의 당사자인 난임여성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소망은 모두가 갖는 보편적인 바람이지만 이로 인해 겪는 감정적, 사회적 고통과 불이익은 그 사회의 환경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출산의 가치와 역할이 매우 중시되는 사회일수록 난임으로 인해 겪는 고통과 불이익은 더욱 심화됩니다. 때로는 '오명 (stigma)'이 되기도 하구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성경말씀의 영향을 뿌리깊게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나 많은 후손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는 이슬람문화권에서 불임은 여성의 존재자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져왔습니다. 나이지리아의 두 부족을 연구관찰한 재미있는 논문(<The problem of infertility in high fertility populations: meanings, consequences and coping mechanisms in two Nigerian communities>)이 있습니다. 


이 중 한 부족은 부계혈통중심이었고, 다른 한 부족은 모계의 혈통이 강조되면서 양쪽 모두의 혈통을 인정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두 부족 모두 결혼과 출산을 통해서만 여성이 진정한 성인으로 인정되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불임으로 인해 겪는 여성의 고통과 그 결과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부계중심혈통의 전통을 가진 부족에서 아이를 낳지 못한 여성은 대부분 이혼을 하거나 부족을 떠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남성후손에 의해서만 장례가 가능한 전통때문에 제대로된 장례도 치루지 못하고, 장지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반면에 부계와 모계의 혈통을 모두 인정하는 부족에서는 불임여성이 임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의례들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불임여성들이 고립되지 않고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단체가 형성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부족의 여성들은 설혹 아이를 갖지 못한다하더라도 결혼을 유지한채 그 부족에 그대로 남는 경우가 많았고 장례도 여러 친족들의 도움으로 치루어지곤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유교중심의 문화,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해도 여전히 난임여성들이 많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전적으로 '사적인 영역'이라는 사회적 통념때문에 이에 대한 정신적 고통과 불이익이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연구에 의하면 불임으로 인한 고통, 정신적 스트레스, 자존감 저하 등은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나누기도 어려운 부분이라합니다.


감정을 드러내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난임여성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자조집단이나 오프라인 모임들이 이러한 긴장의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여러 연구들이 있습니다.

또한 '보완대체의학' 연구에서는 난임여성들과 대체의학 치료자들이 갖는 긴밀한 관계, 감정의 교류와 지원이 그 자체로 치료적 효과 (therapeutic effect)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저 시험관시술에 집중된 난임부부지원사업이 아니라 (시험관시술 자체가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보고들이 있습니다) 임신을 위해 가는 긴 여정, 그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지원들이 함께 있어야할것입니다. 더불어 우리사회의 '난임'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기저의 문제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보다 활발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