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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생활 Tip

임신 중 화학물질 노출 피하기, 세대를 넘어서는 건강관리

by 움이야기 2013. 7. 10.

얼마전 영국의 산부인과 전문가 집단인 Royal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에서는 임신 중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Chemical Exposures During Pregnancy: Dealing with Potential, but Unproven, Risks to Child Health')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잠재적으로 위험한 화학물질, 환경호르몬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은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산업화 이후, 거의 공기처럼 어디나 존재하고 피하기 어려운 화학물질들, 그러나 건강에, 특히 임신 중 노출로 태아의 평생건강에 미치는 악영향들을 염려하면서 몇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가공식품보다는 신선한 식품을 선택하기

-캔이나 플라스틱에 들어있는 음식/음료 줄이기

-보습제, 화장품, 샤워젤, 향수 등의 케어제품 최소화하기

-임신/육아 중에는 가급적 새로운 제품의 가구, 패브릭, 코팅 프라이팬, 차 사용을 최소화하기

-살충제 또는 살진균제의 사용을 피하기

-페인트 피하기

-꼭 필요할 경우에만 진통제 복용하기

-성분에 해로운 화학물이 포함되지 않았거나 '내츄럴 (natural)'이라고 표기되어 있어도 안심하지 말 것


이 발표가 있고 나서 이와 관련한 여러 논란들이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며 미리 주의할 수 있도록 정보를 주는 적절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의견 못지않게 많았던 비판이 '이것들을 어떻게 다 피하라고', '스트레스만 더 가중 시킨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Pregnant women have enough worries without adding sunscreen to the list'라는 기사에서는 임산부들은 그렇지 않아도 충분한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다며,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는 위험 '가능성'만으로 염려거리를 더 늘리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이러한 보도가 오히려 위험이 증명된 임신 중 흡연이나 음주 등이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초점을 흐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 여러 글들을 읽으며 각각의 주장들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임신을 기다리는 여성들에게 가급적 건강한 몸을 만들어 가도록 일상생활의 변화들을 독려해왔었는데, 혹시 그것이 불안과 스트레스, 개인의 책임과 죄책감을 가중시키지는 않았을까 하는 염려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잠재적 위험을 갖고 있는 독성물질에 대한 노출을 방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진화생물학에서는 '태아 프로그래밍 (fetal programming)' 이라고 하여 임신 중 엄마 자궁내에서의 환경이 평생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여러연구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엄마 뱃속에서의 영양상태가 이후 비만, 당뇨와 밀접한 영향이 있다거나, 태아기 때 받은 스트레스가 이후 우울, 정서장애와 관련있다는 많은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임신 중 화학물질, 특히 내분비물질을 교란시키는 환경호르몬에 과다노출되는 경우 이는 내분비기관을 형성하는 단계의 태아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생식호르몬에 과다 노출된 태아의 경우 이후 자궁암, 유방암, 또는 고환암의 발병률이 높아질 수 있으며, 이것이 이 아이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임신을 하게 되면 이 아이의 아이에게, 또 그 아이의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진화인류학자들의 'transgenerational prenatal programming(세대를 넘어서는 산전 프로그래밍)' 이론입니다. 


환경호르몬의 위험에 대해서는 아직 '확증'은 없다고 하더라도 여러 연구를 통해 그 위험이 경고되고 있습니다. 확증을 찾을 때까지 이를 무시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를 예방하는 규제와 행동의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새 생명을 품는 임신이라는 사건이 그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바꾸지 못했던 생활습관들을 건강하게 바꾸는 계기가 된다면 아이뿐 아니라 엄마의 이후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개인의 책임과 실천을 넘어서는 사회전반의 '환경'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제도적 방안들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출처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