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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어린시절의 환경, 생식기능에 영향

by 움이야기 2013. 11. 7.

영국인들은 늘 날씨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영국의 인류학자 케이티 폭스의 책 <영국인 발견>에서는 수줍음 많은 영국인들이 대화를 트는 수단으로 날씨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분석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저는 하루에 사계절이 모두 들어있다고 할만큼 버라이어티한 영국날씨를 그 이유로 들고 싶습니다. 전통을 중시하고 변화를 끔찍히 싫어하는 영국에서 날씨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것은 없으니까요. 지난주 잠시 스코틀랜드에 있는 스카이섬 (Isle of Skye)으로 짧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섬을 잠시 산책하는 동안 우산을 열번은 펴고 접어야했던 변화무쌍한 날씨덕분에 여러번 무지개를 만나는 행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요즘 제가 흥미있게 읽고 있는 논문은 '어린시절의 환경이 생식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입니다. 이는 최근 재생산을 연구하는 인류학자들의 주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초경의 시작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완경에 이르는 여성의 생식주기는 그 기간으로 보나,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나 여성의 생애주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식주기와 기능이 유전자뿐 아니라 어린시절의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여러연구들이 있습니다. 


신체적 환경, 즉 어린시절의 영양, 질병, 신체활동 등이 생식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최근 영국에서 진행된 방글라데시 이민여성 연구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영국으로 이민 온 방글라데시 여성들의 경우는 초경의 시작연령, 난소호르몬의 수치 등이 영국 여성들과 거의 비슷한데 비해 초경이후 어른이 되어 이민온 여성들의 경우는 영국여성들에 비해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 난소호르몬의 수치가 현저히 낮아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여성들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와함께 FSH, AMh 등의 호르몬검사를 통해 난소의 노화속도를 조사한 연구에서도 방글라데시 거주자와 성인 이민자의 경우 어린시절 이민자와 영국인들에 비해 난소의 노화속도가 현저히 빨랐습니다. 이는 방글라데시라는 자원이 충분하지 않고 질병의 위협이 늘 있는 환경에서 여성들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제한된 에너지를 쓰다보니 생식기능에 쓸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정신적 환경, 즉 어린시절의 스트레스, 부모의 이혼 등 가족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초경연령과 재생산 전략에 미치는 여러 연구들이 있습니다. 여러 세팅에서 이루어진 연구결과는 거의 일치하는데,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 성적성숙과 초경연령이 빠르고 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또한 아버지의 부재, 양아버지나 어머니의 연인이 함께 사는 경우 이른 초경연령을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어린시절을 불안정한 환경에서 보낸 경우 미래에 대한 기대, 즉 배우자의 양육에 대한 도움, 애정관계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없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재생산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때문이라는 것이 진화생물학의 설명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나라에서는 성조숙증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초경을 일찍 시작하고 출산은 적게, 수유는 짧게하면서 여성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이 현저히 길어지면서 유방암 등 여성호르몬 의존성 암발생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혹은 호르몬요법으로 월경시작을 강제로 늦추려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생활을 살펴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과도하지 않은 영양 (특히 호르몬처리된 육류 등을 피하기), 적절한 운동과 함께 신뢰할 수 있는 관계맺기, 아이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관리해주는 것이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건강한 생식주기를 맞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