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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여성이 행복하게 임신, 출산,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함께 만들 수 있기를”

by 움이야기 2014. 1. 2.



 

여성이 행복하게 임신, 출산,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함께 만들 수 있기를

 - 문현주



이제 영국 생활도 1년이 훨씬 넘었는데요. 지금까지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의료 환경을 접하고 공부하면서 현장에서 확인한 영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환자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게 다른지?

 

가족 모두 건강하게 영국생활을 한 것은 다행이지만, 덕분에 아쉽게도 영국 의료시스템의 직접 경험은 적었습니다. 그래도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 관찰을 중시하는 인류학자의 자세로 영국의 공공의료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를 알아가려 노력했습니다.

 

제가 NHS에 대해 받은 첫인상은 질병의 치료 못지않게 예방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린 주치의로 그 지역에서 중요하게 발생하는 질병들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예방 프로그램을 아주 탄탄히 마련해 지역주민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다양한 질병에 대한 자세한 안내서들을 제공합니다. 출생 시부터 연령에 따른 무료 예방접종 프로그램, 건강검진 프로그램, 만성병 관리프로그램들이 시스템화되어 있고요. 때가 되면 등록 병원에서 직접 전화나 편지로 알려줘 필요한 진료를 놓치지 않고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잠시 머무는 유학생 가족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덕분에 우리 가족도 필요한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등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학기 진행한 인터뷰 프로젝트와 영국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간접 경험한 NHS 치료는 비교적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누구나 치료비 부담 없이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문턱이 낮은 의료, 나를 가장 잘 아는 오랜 주치의와의 신뢰 속에서 편안하게 이루어지는 진료는 NHS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이었고요. 필요한 때가 아니면 약이나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NHS의 치료 스타일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꼭 나쁘다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이 되는 긴 대기 시간은 최근 대규모 조사에서 92% 영국인이 GP와의 진료 예약이 편리하다고 답한 것으로 보아 외부 시선만큼 큰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다만 상급기관으로 이송 시의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병원에서 느끼는 주인의식, 아파도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나를 잘 아는 주치의에게 평생 건강을 상의할 수 있는 의료제도는 영국에서 가장 부러운 제도였습니다.

 

외국에서는 한의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미국이나 다른 서구 유럽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도 보완대체의학(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습니다. 고학력, 고소득, 중상류 계급의 이용률이 높고 특히 영국에서는 침, 카이로프락틱, 동종요법 등이 대표적인 보완대체요법으로 많이 이용됩니다. 일부 NHS 클리닉에서 대체보완의학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보완대의학은 개인적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Private 의료 영역에 있습니다.

 

사실 외국에서 한의학(Korean Medicine)’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중의학이나 침 치료는 많이 알고 있고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한의학은 상대적으로 알려진 것이 적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제도적으로 양립하면서 국가 의료보험으로 두 의학이 모두 보장되는 한국의 의료제도를 설명하면 큰 관심을 표명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전통의학이 서양의학과 제도적으로 대등한 위치를 갖고 의료에 참여하는 매우 드문 경우이니까요. 한국의 의료제도가 이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환자들이 두 의학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향을 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오랜 역사의 우수한 한의학을 좀 더 세계화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꼭 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연구가 있다면? 현재 생각하고 있는 2014년 계획은 무엇인가요?

 

2014년 하반기에는 귀국해서 진료와 연구를 병행할 계획입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여성의 생식 건강(reproductive health)’이며, 특히 생식 건강이 여성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가 가장 큰 연구 주제입니다.

 

생식에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여성의 생식기능은 억제되며, 이는 병리가 아니라 적응이다.’라는 진화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경쟁적이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한국사회의 환경이 여성의 생식기능에 미치는 영향 무엇인지를 호르몬의 변화를 통해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와 함께 현재 한국사회에서 생식 연령 여성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근원이 무엇인지도 함께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못지않게 이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큰 사회적 환경의 문제를 살피고 개선하는 것이 여성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제 연구가 작은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난코스를 헤쳐나가고 있는 이 땅의 여성들과 ‘움이야기’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새해 인사를 해주세요

 

임신, 출산, 육아는 새 생명을 창조하고 사회적 구성원을 양육하고 역사를 이어가는 중요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개인의 몫, 여성의 역할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임신은 건강한 임신에 적합한 균형 잡힌 생물학적 몸 이외에도 이를 지지하고 돕는 사회적 관계, 환경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임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자신을 자책하며 스트레스받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잘 돌보며 이와 함께 여성이 행복하게 임신, 출산,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갈 때 건강한 임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새해에는 몸도 건강, 마음도 건강할 수 있는 사회에서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시길요. 원하시는 모든 분께 건강한 임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멀리서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