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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책이야기] 속죄

by 움이야기 2014. 12. 22.

제가 참여하고 있는 책 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함께 정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말이 거창해 독서토론모임이지, 이야기를 시작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무한 수다가 시작됩니다. 책은 단지 토론의 시발점이 될 뿐, 어느새 드라마, 영화,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가끔은 '근데 우리가 이야기하려했던게 뭐였더라...' 한참을 되짚어야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사람이 열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열사람이 한권의 책을 읽으며 나누는 다양한 시선과 깊이가 함께 책 읽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게 합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도 이 책모임에서 함께 읽게된 책입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문학 소녀 브리오니는 어느 여름날 분수대 옆에서 언니 세실리아의 돌발적인 행동을 목격합니다. 그 옆에는 한때 브리오니가 흠모했던 옆집 오빠 로비가 서있었는데 이 장면은 소리가 없는 무성영화처럼 어린 문학소녀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후 잘못 전해진 편지, 비밀스러운 장면의 목격 등 순간순간의 단편들은 어린 소녀의 머리 속에서 어느새 한편의 진실같은 소설이 되어 두 연인의 일생을 파멸에 빠트리게 됩니다. 그리고 소녀의 평생의 속죄가 시작됩니다.

 

이 소설의 백미는 이언 매큐언의 아름답고 섬세한 문체입니다. 가볍고 재미있는 소설들을 낄낄거리며 아무 생각없이 읽고 즐기는 것도 힐링의 한 방편이지만, 이 책은 글자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하는 행복이 있었습니다. 결코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어 좀 힘들고 버겁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뭔가 풍요로워지는 특별한 느낌이 있습니다. 어린 소녀의 작은 오해가 어떻게 여러사람의 인생을 무참히 파괴하게 되었는지, 전쟁의 비극과 겹치면서 그 아픔이 몸서리를 치게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오해는 상상력이 풍부한, 막 어린이에서 소녀로 전환기를 겪고있는 브리오니의 이야기만은 아닐겁니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도 어쩌면 이러한 순간순간의 스냅샷들, 맥락이 빠진 장면의 불완전한 연결이 가져온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찟, 긴장과 반성을 하게됩니다.

 

<속죄>는 긴 겨울밤 읽기에 딱 좋은 소설입니다. 소설을 충실하게 반영한 영화 <어톤먼트(Atonement)>를 함께 보시거나,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소개된 '속죄'편(http://www.podbbang.com/ch/3709?e=21462361)을 들으시면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훌륭한 독후활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단, 소설을 먼저 읽으신 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