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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책이야기] 메이드 인 경상도

by 움이야기 2015. 2. 9.

요즘 저는 분명 한글을 읽고있는데도 무슨 뜻인지 잘 몰라 헤매거나, 눈으로 글씨를 보고는 있기는한데 머리에 들어오기 전에 날라가버리는게 '난독증 아닐까'하는 걱정을 할 정도입니다. 촌스럽게도 독서를 취미로 하고있는 사람에게는 참 곤욕스러운 일입니다. 이럴때 제일 좋은 것은 만화책이지요. 머리를 쓰지 않아도 재미있게 술술 읽히니까요. 우연히 만난 김수박의 <메이드 인 경상도>는 재미와 함께 감동, 성찰까지 선사한 보석같은 책이었습니다. 


<메이드 인 경상도>는 경상도 남자 김수박의 자전적 만화입니다.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니..."라는 질문을 하도 받다보니 경상도 출신으로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의 기억이 존재하는 가장 최초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인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 만화이지만 이 속에는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최초의 기억인 박정희 대통령의 피격에서 군부독재, 경상도에서 보고 들은 광주민주화운동까지. 그러나 개인의 역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사춘기를 겪으며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그리고 청년으로 자라는 시간 속에는 친구들이 있고, 동네 형들이 있고, 또 가족들이 있습니다. 개인의 역사는 이렇게 오랜 시간, 주변의 환경, 사람들과 주고받는 관계, 상호작용의 복잡한 맥락 속에서 형성되고,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 집단과 사회를 형성하는데 이렇게 켜켜이 쌓인 역사와 맥락에 대한 고찰없이 퉁쳐서 "니네 왜 그러니?"라는 질문이 얼마나 우문인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부러웠던 것은 오래된 기억창고 속에 쌓아놓았던 일화들을 불러내어 생생하게 살려놓은 작가의 능력입니다. 작가와 비슷한 시대를 공유하며, 그러나 서울이라는 다른 공간에서 자랐던 저 역시 "맞아, 맞아"하며 맞장구를 치며 단숨에 읽었습니다. 


KTX를 타면 부산에서 서울, 이제 곧 광주에서 서울까지 두, 세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작은 나라에서 우리는 아직도 지역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큰 벽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소통은 이해에서 나오고, 이해는 앎에서 시작되지요. 제목은 <메이드 인 경상도'>지만 실은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읽고나면 타자에 대한 경계보다는 공감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