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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여성마음연구소

[움 데이트] 심리치료 전문가, 하영윤씨 “‘불임여성의 존재가치 찾기’ 돕고 싶어”

by 움이야기 2011. 8. 1.



[움 데이트] ‘트랄랄라’에서 만난 사람... 심리치료 전문가, 하영윤씨

“‘불임여성의 존재가치 찾기’ 돕고 싶어”
 

 


<트랄랄라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하영윤씨(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현재 오는 9월에 <움여성한의원>에서 진행할 불임여성들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연구 중인 불임여성들의 심리치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집단상담을 통해 만나 본 불임여성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주로 어떤 건가요?
 

‘불임’이란 안경을 쓴 낯선 나

우선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조차 ‘불임’이라는 안경을 통해 왜곡되게 받아들이죠. 그런 자신에 대해 예전에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색하게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되요.

예를 들면, 별 거 아닌 거에 샘내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다른 사람의 기쁜 사연도 들으면 왠지 속상하고, 그런 거요. 결국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느껴요.

 

숨기고 싶은 ‘불임’이란 죄

제가 만났던 상담 참여자들은 ‘불임’을 ‘암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경험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불임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거죠. 심지어 불임 치료를 위해 먹고 있는 한약도 미안하고 부끄럽게 여겨 숨어서 먹기도 해요. 또한 이런 부끄러운 불임의 죄 때문에 애꿎은 남편까지 고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죄책감을 느끼곤 해요. 불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밝혀진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멈춰버린 시간, 잃어버린 존재의 의미

상담에 참여한 여성들은 불임이라는 현상이 자신에게 일어난 이후부터 삶의 시간들은 멈춰버렸고 지금까지의 삶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어요. 특히 자신의 인생에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도, 노력에 의해 개선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는 상실됐다고 여기죠. 
 

그저 혼자된 나를 들볶기

이러한 불임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모든 대상(상처 입히는 가해자로 여겨지는)에 대해 방어 자세를 취하게 되요. 스스로는 망망대해에 혼자 고립된 섬이 되려고 하고요.
그러면서 외로움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들볶으며 일부러 신체적인 고통 속에 자신을 처하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죠.



● 집단상담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체험을 하게 되나요?
 

‘내가 유별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

참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상황이 혼자만이 겪는 특별한 경험으로 여기는데요. 그래서 더욱 외롭다고 느끼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어 친구관계도 멀리하고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고 말해요.
그러다가 함께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상황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같이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되죠. 자신이 ‘이상하지 않구나.’하고 안심하게 되면서 자신을 지지하는 아군을 얻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해요.
 

“불임이니까 불임이라고 그러지” ; 벗어내어 다시입기

자신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평소 ‘불임’이라는 말조차 꺼내는 것을 꺼려했던 참여자가 어느 순간엔가 불임이라는 말을 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불임이라는 현 상황을 자신의 존재 의미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자신이 가진 여러 문제 중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되죠. 그러면서 불임이 주는 압력과 고통에서 조금 편해지기도 하고 어떤 참여자는 불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나는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가치

어떤 참여자는 처음에는 불임 때문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하면서 스스로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는데요. 자신은 소중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의 욕구는 억누른 채 늘 ‘나는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답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나는 괜찮지 않다’는 기분과 마음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표현하게 되죠. 다른 사람 기준으로 자신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사랑 받을 가치가 있음을 새삼 인식하게 된 거에요. 자신의 가치가 인정받았던 옛 기억을 다시 회상해내면서 그것에 맞는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를 표현하기도 했어요.
 

‘선순환’의 시작

또한 참여자들은 상담 프로그램 경험이 자신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자신 안에 무언가를 시작해낼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음을 발견하게 되죠.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자기 안에 갇혀있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그것이 무엇이든 긍정적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건데요. 불임으로 인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던 참여자들이 스스로를 용서하며 이제는 치료 과정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 보다 가볍게 뭔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 불임여성들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가장 궁극적인 상담치료의 목적은 임신 여부에 상관없이 불임여성 스스로 자신이 삶의 주체임을 인식하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보살피는 방법을 알게 되도록 돕는 건데요.

하지만 참여자들에게는 아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게 포기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나면 임신이 더 잘 될 수 있겠다, 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집단 상담의 목표는 바뀌지 않겠지만 임신에 대한 불임여성의 기대 자체를 인정하고 상담 과정 속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이를 다루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러한 고민들을 9월에 진행할 상담 프로그램에는 좀 더 적용해 보려고 해요.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리고 불임 치료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다룰 수 있는 이완법 등을 더 보강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떠나서 나의 존재가치를 찾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지는 건 변하지 않을 겁니다. 결국 자기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도록 돕는 것이죠. 사실 누군가를 상담 몇 번으로 바꾸는 건 어렵습니다. 다만 덜 괴롭게 만드는 것, 그 과정을 돕는 것,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도록 지원하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하영윤씨는 2009년에 '움여성한의원'(원장 문현주) 부설연구소인 <움여성마음연구소>에서 10주 과정의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오는 9월에는 그동안의 상담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움여성한의원과 트랄랄라 카페 두 곳에서 동시에 <불임여성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