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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문원장의 365일 여성 건강지키기> "이름을 부른다는 것"

by 움이야기 2011. 9. 29.


여성신문에 칼럼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경황도 없고, 글쓰기도 쉽지 않고, 그래서 좀 망설였는데

오랜동안 애정을 갖고있던 '여성신문'이라해서 부담을 무릅쓰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2주에 한번정도 새로운 글을 업데이트 할 예정이구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


 

여성신문 로고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50885

 

 

<문원장의 365일 여성 건강지키기>

 

이름을 부른다는 것

 

자기 몸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짜장면이 돌아왔다!

‘자장면’이라고 쓰고 불러야한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그동안 뭔가 심심하고 꺼림칙한 느낌이 들진 않으셨나요? 전 왠지 그 맛의 삼 할은 손해 보는듯한 기분까지 들었는데요. 그런데 최근 국립국어원이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했다는 소식입니다. 드디어 떳떳하게 부르게 된 ‘짜장면’의 복권이 마냥 반갑기만 합니다. 부르는 것만으로도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는 짜장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홍길동의 마음이 이런 걸까요.

 

이름은 존재를 규정합니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가 이름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꽃’이 되는 것처럼. 짜장면이 자장면이 아니라 짜장면이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각자 이름을 갖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부모는 심혈을 기울여 아이의 이름을 짓습니다. 내 아이에게 가장 어울리는, 의미 있고 정당한 이름을 붙이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반면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뭔가 숨기고 싶은 것,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 부끄러운 것들에 우리는 이름 붙이기를 주저합니다. 은근 슬쩍 넘어가려는 경향도 있고요. 바로 ‘월경(月經)’이 그렇습니다. 여성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일 수 있는 월경이지만, 그 명명(命名)의 역사는 그리 순탄치 않았지요.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골목길을 몇 번이나 뱅글뱅글 돌던 경험. 겨우 검정 비닐봉투에 꼭꼭 숨겨오던 생리대만큼이나 은밀한 ‘월경’을 우리는 감히 소리 내어 부르지 못했습니다. ‘장미꽃이 피었다’거나 ‘공산당이 쳐들어왔다’거나 또는 그냥 부끄러움 가득한 표정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날’이라 말했지요.

 

그나마도 나아지면서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 ‘생리(生理)’인데 사실 생리는 본래 ‘생물체의 기능과 작용, 또는 그 원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호흡, 소화, 순환, 배설, 생식 등의 작용을 총칭’하는 일반명사로 구체적인 것을 연상시킬까 두려워하며 여성의 월경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대치어일 뿐이죠.

 

음지의 이름, ‘월경’이 양지로 나온 것은 제 기억에 1999년 처음 시작된 ‘월경페스티벌’부터가 아닌가 싶은데요. ‘월경’이라는 말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그것도 ‘축제’라니. 참으로 발칙하고 유쾌한 상상이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월경은 떳떳한 이름을 갖게 되었고 공공연히 불리기 시작했지요. 이제 월경은 뭔가 입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어둡고 불쾌하고 은밀한 경험에서 자연스럽고 건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현상이 되었습니다.

 

여성의 몸과 관련해 의미 있는 명명(命名)의 변화는 또 있습니다. 폐경(閉經)이 아닌 완경(完經). 물론 폐경으로 부르지 않고 완경이라고 해서 끝난 월경이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닫혔다’, ‘여성으로서의 삶이 끝났다’라는 뉘앙스의 ‘폐경’ 대신 ‘연륜이 쌓이면서 과제를 마치고 완성했다’는 의미의 ‘완경’을 말하는 것. 이는 그 이름에서부터 좀 더 다른 의미를 찾게 되고 갱년기 이후 여성의 삶을 더욱 활기차고 풍요로운 그것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처럼 뭔가에 대한 이름을 만들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약속을 넘어 그 의미를 규정하고 나아가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이와는 상대적으로 ‘이름붙이기’를 신중하게 할 필요도 있습니다. 특히 질병의 명사화는 ‘낙인’의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신은 ‘암’입니다”라는 진단은 눈앞이 깜깜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의 선고가 되기 마련이죠. ‘이제 나는 죽었구나...’하는 절망감이 가장 먼저 찾아올 것이고, 이 무시무시한 병명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암’이라는 고정된 명사 대신 ‘세포가 이상세포로 변한 상태’라고 풀어 말한다면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지지 않을까요? 뭔가 변화를 위해 노력해볼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보이고요.
 

‘불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의학적으로 불임이란,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성생활을 하면서 1년 내에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로 정의하는데요. 이는 고정불변한 ‘질병’이 아니라 일정기간 임신이 되지 않는 ‘경험’ 또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임신이 불가능하다’고 오역될 수 있는 ‘불임(不姙)’이라는 말 대신 ‘임신이 어렵다’는 의미의 ‘난임(難 妊)’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고정된 병명 대신 ‘아직 임신이 되지 못한 상태’라고 풀어 말하면 어떨까요.

 

‘불임’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아이가 영영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아오고, 덜컥하는 마음으로 임신을 위한 전권을 병원에 위임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아직 임신이 되지 않은 ‘상태’이며, 고정된 질병이 아니라 단지 ‘경험’일 뿐이라고 인식한다면 능동적으로 임신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훨씬 많아지죠. 여성의 자연스런 생리현상인 임신의 주도권을 의료기술과 병원에 넘겨주고 무기력하게 그 과정을 따라가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보다는 ‘아직 임신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부분의 기능이 약해서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건강한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현재 자신의 상태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이름 붙이고 인식할 것인가가 주체적인 실천을 하는데 그 출발이 될 수 있을 거란 얘기입니다.

 

짜장면이 표준어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에 호들갑을 떨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월경에, 완경을 거쳐 불임 다시 부르기까지 왔네요. 짜장면이 제 자리를 찾은 것은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짜장면 주세요”를 외쳐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입니다. 또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월경’의 이름을 불러주는 의미 있는 행동들이 여성의 몸을 긍정하고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계기들을 만들어 왔고요. 갱년기 여성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폐경은 완경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긍정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도록 돕는 계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흔히 우리가 ‘불임’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대해서도 단정적인 태도보다는 보다 열린 마음으로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몸을 대했으면 합니다. 고정된 질병 이름에 억압되고 갇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몸의 흐름을 바꾸고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 무엇이라 부르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 그것은 대상과 내가 어떤 의미로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첫 단추가 되지 않을까요.

 
 
문현주 원장(움여성한의원)
1153호 [건강] (2011-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