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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아이 낳고 누구나 한 번쯤 “나 벌써 치매?” <문현주 원장의 여성건강 365일>

by 움이야기 2011. 12. 11.
*여성신문 연재 칼럼 <문현주 원장의 여성건강 365일>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문현주 원장(움여성한의원) 1161호 [건강] (2011-11-25) http://www.womennews.co.kr/news/51529


아이 낳고 누구나 한 번쯤 “나 벌써 치매?”

건망증 대처하기, 겁먹기 보단 ‘나를 보다듬어야’

 

 

여자들 수다에 빠지지 않는 주제, 건망증

 

‘치매’라니요. 이 젊고 예쁜 아가씨가 노인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니요.

 

한창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천일의 약속> 이야기입니다. 안 그래도 깜빡깜빡하는 건망증이 심해져 걱정인데 이 드라마 때문에 “혹시 나도 치매 아니야?” 하며 걱정하는 여성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남성의 대화가 ‘군대 이야기’에서 슬슬 ‘축구 이야기’, ‘재테크 이야기’로 넘어갈 즈음 여성의 대화는 ‘출산’의 경험에서 ‘건망’의 경험으로 넘어가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찾던 TV 리모콘을 냉장고 안에서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오히려 애교에 가깝지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지 않고 외출했다 길에서 불자동차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자기 집 이야기였다는 위험천만한 경험, 외출 준비를 하며 머리에 말아놓은 헤어 롤을 깜빡 잊고 그대로 집밖을 나간 민망한 경험... 이야기하다보면 끝없이 나오는 여성들의 수다주제입니다.

 

저 역시 마흔을 넘기면서 건망증이 무척 심해졌습니다. 집 전화번호를 잊어버려 핸드폰 검색을 하기도 하고, 매일 누르던 비밀번호가 생각 안 나 집 앞에서 한참을 우울한 마음으로 서성인 적도 있습니다.

 

아이 낳고 더 심해지는 건망증, 이유가 있다?

 

그런데 ‘건망증’은 유독 여성만의 전매특허일까요? 왜 여성들은 자꾸 깜빡깜빡할까요?

 

“아이 둘 낳고 나니 건망증이 너무 심해졌어요.” 흔히들 하는 얘기인데요. 왕년에는 총명하고 스마트했던 여성들이 건망증을 호소하기 시작하는 것은 보통 출산 후 부터입니다. 물론 출산과 함께 보살펴야할 아이가 생기고 챙겨야할 일들이 훨씬 많아지면서 기억해야할 일도, 그만큼 잊게 되는 실수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뿐 아니라 몸의 변화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출산을 경험하며 크게 변하는 여성의 육체적 건강도 한 몫을 차지하는 것이지요. 출산 후에는 기혈(氣血)이 급격히 허약해지는데 이 때문에 심신(心神)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면서 기억력이 감퇴하고 건망증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40-50대 여성들은 갱년기를 거치면서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 뇌의 전두엽 등 대뇌피질 세포가 퇴화하면서 자연히 기억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 경우 허약해진 기혈을 보강해주고 스트레스로 울체된 기 소통을 도와주면서 심신을 안정시켜 주면 집중력이 높아지면서 깜빡거리는 건망증도 덜해질 수 있습니다. 바로 ‘총명탕’의 효과입니다.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에게 총명탕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가 기능을 대신하는 중년의 뇌

 

그러나 스스로 변해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도 매우 중요합니다. 중년의 뇌는 결코 쭈글쭈글해지고 쇠약해지고 퇴화하는 초라한 뇌가 아닙니다. 비록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고, 공과금 납부일을 놓치고, 하루에도 열두 번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아야하지만 중년의 뇌는 탁월한 통찰력과 문제해결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뇌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중년의 뇌는 사실을 축적하는 기억력과 정보의 처리속도는 한창때에 비해 떨어지지만 대신 여러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엮어내고 패턴화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더욱 높아진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지혜’가 ‘지능’을 대신하는 것이지요.

 

또한 ‘망각’이 꼭 쇠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모든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마법의 약이 있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내가 저지른 실수들, 부끄러운 기억들, 서운하고 기분 나빴던 순간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행복하게 현재를 살 수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 ‘건망’은 인생의 아주 좋은 약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겁먹기 보단 “나 먼저 챙기기”

 

기억력 감퇴와 건망은 알츠하이머로 대표되는 치매의 초기증상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크게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노화의 결과요, 인생의 친구니까요. 특히 집안 대소사, 아이들과 남편의 일정, 직장 일까지 두루두루 챙겨야하는 여성들에게는 잊을 일들이 훨씬 많은 법이지요.

 

우울과 스트레스는 뇌손상의 주범이 되고, 육체적 피로와 영양불량도 뇌세포의 노화를 가속화시킵니다. 너무 많이 분산된 관심을 단순화시키고, 가족들에게 쏟는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영양 많고 건강에 좋은 음식 나 먼저 챙기고, 즐겁게 머리를 쓸 수 있는 취미생활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꾸 잊어버리는 나의 머리를 구박하지 말고 중년의 뇌가 유리한 ‘소통’과 ‘네트워킹’, 지혜의 힘을 빌리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