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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이야기

영국의 체외수정, 꼼꼼한 가이드라인

by 움이야기 2013. 2. 26.

'이제는 봄이 오려나봐..' 

기대하기가 무섭게 눈보라가 칩니다. 그러면 '아, 맞아. 여기가 영국이었지..' 하는 자각을 새삼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변화무쌍한 영국날씨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영국인들은 반팔에 스웨터, 겨울잠바를 골고루 껴입고 다니는 것이 기본이지요. 방수잘되는 모자달린 겉옷은 필수, 언제 눈이, 비가 올지 모르거든요. 

이 시기 한국도 늘 그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봄이 올거 같다가도 꼭 꽃샘추위가 오고, 쉽게 와주지 않는 봄. 그래도 꼭 오기는 온다는 것이, 반드시 봄은 온다는 것이 희망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 언론에는 영국의 국립연구소인 'the 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linical Excellence (Nice)'의 새로운 체외수정 가이드라인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42세 여성도 인공수정 불임치료 받을 수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을 대상으로 새로 발표된 가이드라인에서는 두가지 새로운 점이 눈에 띄는데요, 하나는 기존에 39세까지만 적용되던 시험관시술 지원을 40-42세의 경우에도 1회는 지원하도록 하였고, 원래 3년 이상의 자연임신 시도 후 임신이 안되는 경우 지원하던 시험관시술을 2년 시도 후 할 수 있도록 기간을 줄였다는 점입니다. 이 참에 영국의 체외수정 정책과 현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NHS라는 공공의료로 대표되는 영국에서는 체외수정에 대해서도 의료비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체외수정 지원기준이 조금씩 다른데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보면 NHS의 지원기준은 23-39세의 여성, 무정자증이나 난관폐색 등 확실한 불임원인이 있는 경우, 임신시도 후 3년이상 지난 경우 3회의 체외수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NHS의 기준일 뿐이고 실제 지원은 'Primary Care Trust (PCT)'에서 하고 있어서 지역의 사정에 따라 지원범위는 크게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노인인구가 많아서 예산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체외수정에 대한 지원을 한번밖에 못받기도 하고 웨이팅리스트가 길기때문에 오래 기다려야하기도 합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체외수정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달라진다고 해서 'Postcode lottery (우편번호 복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한국언론의 보도에서는 넓어진 시험관시술의 혜택이 부각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어느 나라보다도 꼼꼼하고 엄격한 영국의 체외수정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영국 <Guardian>에 소개된 새로운 가이드라인 소개 기사를 보면 ('Health service to fund IVF for the over 40s') NICE의 가이드라인에서는 가급적 여러개의 난포를 자라게 하는 과배란약물을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인불명불임의 경우에는 과배란약물의 사용이 여성의 생식건강을 해칠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와함께 체외수정으로 인한 다태임신의 위험을 강조하면서 가급적 한개의 수정란만을 이식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료기관에서 과도한 성공률 경쟁을 위해 여러개의 수정란을 이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다태임신의 위험을 높이면서 산모나 태어나는 아이들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급적 한개의 수정란을 이식하도록 하고 37-39세에서 특정한 상황에서만 2개를 이식하도록 가이드라인은 권고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시행되는 체외수정시술은 HFEA(Human Fertilisation & Embryology Authority)라는 독립기관에서 철저한 관리감독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정확한 정보를 담은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홈페이지 (http://www.hfea.gov.uk/index.html )에 가면 자세한 정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시험관시술의 성공률과 함께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험관시술을 진행할 때도 자세한 카운셀링을 받고 환자의 동의절차가 필요한데 이 동의절차에는 '시험관시술의 장미빛 청사진' 외에도 수반될 수 있는 위험들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는 환자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Guardian>의 또다른 기사에는 이번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고령난임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IVF for women over 40 doesn't address the root of the problem') 여성의 생식기능은 35세 이후 급격히 떨어지는데 영국에서도 자발적인 선택이든, 비자발적인 상황이든 여성의 1/5 정도가 아이가 없는 상태로 40대 중반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임신을 미룰 수 밖에 없는 여러 사회적 환경이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시험관시술 지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임신에 우호적인 사회적 환경, 임신으로 불이익을 받지않는 직장문화, 탄력적인 근무환경,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단 영국의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꼭 고려되어야하는 점입니다. 


이번학기 저는 우리나라의 보조생식술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시술대상자들에 제공되는 정확한 정보들의 부재, 그리고 관리의 부재입니다. 예상되는 성공률, 그에 따른 위험, 장점과 단점을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고 시술의 가이드라인이나 시술을 컨트롤하는 역할의 주체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이는 우리사회의 어떠한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과 관계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인류학적 흥미를 갖고 살펴보는 중입니다. 


체외수정이 불임의 고통을 덜어주는 희망의 치료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꼼꼼이 따져 선택할 수 있는 자세한 정보제공과 환자의 건강과 안녕을 고려한 가이드라인, 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진출처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