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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 다이어리

영국에서 전하는 일상

by 움이야기 2014. 1. 27.

자주, 조금씩이라도 소식을 전해야지, 하면서도 마음처럼 그게 쉽지않습니다. 그럴때면 그저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 얹어놓은 기분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그냥 말 그대로 영국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려합니다. 


영국에서 두번째 맞은 이번 겨울은 지난 겨울에 비해 부쩍 푸근합니다. 영하로 기온이 내려간 날은 거의 없었고 그래서 올 겨울 눈을 한번도 보지 못했지요. 아이들은 작년에 산 썰매를 한번도 못탔다며 아쉬워하고 저도 눈 없는 겨울이 왠지 서운하기만 합니다. 이상한 것은 절대온도는 영국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체감온도는 훨씬 춥다는 사실입니다. 축축하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이 곳 특유의 날씨 탓도 있겠지만, 한국과 다른 난방시스템이 더 큰 몫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습냉(冷)'한 날씨에 정말 '삭신이 쑤시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하루에도 몇번씩 한국의 후끈후끈한 온돌을 그리워합니다.  


영국의 학기는 삼 학기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실 수업을 듣는 수업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안배해 공부하는 연구과정에 있어서 특별히 방학기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기간을 전후해서는 저도 잠시의 휴식을 누렸습니다. 짧게짧게 근처 여행을 하기도 하고, 보고싶었던 영화나 책도 느긋하게 보면서요. 그렇게 재충전을 하고 다시 일상에 복귀했습니다. 연구에 필요한 몇개의 강의를 듣거나 관심있는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외에 대부분의 시간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보냅니다. 지금은 본격적인 현장연구를 준비하며 관련 서적이나 논문들을 읽고 분석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부터 시작한 의과대학의 튜터링은 이번학기에도 이어서 계속 진행 중입니다. 의과대학 수업은 사실 처음에는 부담이 많았습니다. 빠듯한 연구시간을 쪼개서 별도로 수업준비를 해야하고, 게다가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은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였으니까요. 그런데 한학기를 보내면서 정말 좋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 의과대학의 수업과정을 엿볼 수 있고 의대생들과 함께 토론하는 자리에서 저 역시 많은걸 배울 수 있으니까요. 지난 주 이번 학기 첫 수업에서는 이 곳 의대생들이 이 년간 필수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Community Placement'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수업도 많고 시험도 많은 바쁜 의대생들이지만 매 주 하루씩 지역의 각종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참여관찰을 해왔는데, 마지막으로 이를 질적연구보고서로 제출하는 것이 큰 과제 중 하나입니다. 금연단체, 난민캠프, 홈리스지원단체, 성폭력피해자 지원단체,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 등 다양한 자선단체와 기관에서 참여관찰한 결과들을 수업시간에 함께 나누었는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머리 속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우선, 별로 크지도 않은 이 작은 소도시에 이렇게 다양한 자선단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고-사실 영국은 자선단체(charity)가 일상인 나라이기는 하지요-, 환자와의 원활한 소통과 관계맺음이 의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치료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아는 임상의로서의 관점에서 볼 때도 학생때부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맺으면서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환경들을 살필 수 있도록 돕는 이들의 교육과정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졸업식을 했습니다. 석사과정은 작년 여름에 끝났지만 뒤 늦게 식을 한 것이지요. Congregation이라고 부르는 더럼대학의 졸업식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더럼성과 성당에서 진행되었는데 긴 역사와 전통이 무색하지 않게 매우 엄숙하며 장엄하였습니다. 늦깍이 공부로 그 대열에 선 저 자신을 잠시 대견해하며 한의사이자 인류학자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 길이 모쪼록 의미있는 발걸음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추운 겨울 마음만은 따뜻하게, 건강하시고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