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움 다이어리

스트레스와 임신, 복잡한 연결고리들

by 움이야기 2014. 3. 18.

진단기술의 엄청난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질병발생의 매커니즘이 속시원히 밝혀져있지 않습니다. 난임의 문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 피임을 하지않고 임신시도를 했지만 일년이 넘게 임신이 되지 않으면서 많은 부부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불임검사'를 받습니다. 월경주기별로 혈액검사, 나팔관검사, 초음파검사, 정액검사.. 다양한 검사들을 받지만 그 중 반 이상은 아무 이상이 없는 '원인불명' 난임이거나 불규칙한 배란 등 약간의 기능적 이상이 있기는 하지만 치료가 필요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며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편히지내라'는 처방아닌 처방을 받게 됩니다. 


원인불명, 기능적 난임의 가장 큰 원인중 하나로 지목받는 '스트레스'는 실제 임신률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사실 스트레스와 임신과의 관계는 심증은 매우 크나 그에 비해 물증은 빈약한 연구분야입니다. 일단, 연구 디자인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그룹과 함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대조군이 있어야하는데 그 대조군을 마련하기가 쉽지않고, 그렇다고 사람에게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실험은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지금까지 이루어진 많은 연구는 시험관아기와 같은 체외수정 세팅에서 정신적 스트레스와 임신률과의 상관관계를 찾는 연구였습니다. 여러 연구에서 불안, 우울 등 장기간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는 경우 시험관 임신률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1993년 Thiering 팀의 연구결과, 우울 수치가 높은 여성의 시험관임신률이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고하였고 (13% vs. 29%), 2000년 Domar 등은 그룹심리치료 등을 받은 그룹에서 55%가 일년내에 임신했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에서는 20% 밖에 임신을 못했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정신적 스트레스와 임신의 밀접한 상관관계, 임신에서 심리적 지지의 중요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들이 난임여성을 대상으로, 병원세팅에서 이루어진 연구라 난임이 가져온 정신적 스트레스와 스트레스로 인한 난임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들이 있습니다. 


최근 영국에서 이루어진 건강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러한 비판들을 어느정도 비켜갈 수 있는 연구라 평가받습니다 ('Stress reduces conception probability across the fertile window: evidence in support of relaxation'). 274명의 임신을 시도하고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6개월간의 월경주기동안 생체지표를 추적조사한 결과 알파 아밀라제 수치가 높은 여성일수록 한 주기에 임신되는 확률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알파 아밀라제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때 교감신경계가 이에 반응하면서 분비가 증가되는 카테콜아민의 수치를 반영하기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 정도를 잘 나타내주는 생체지표로 알려져있습니다. 다시 말하며,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교감신경계가 흥분되고 그 결과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 축에 영향을 미치면서 배란, 수정, 착상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인해 임신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악영향, 다시말해 질병과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느냐일 것입니다. 그 원인에 대한 인식없이는 근본적인 대책과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수십년간 연구를 진행한 역학자 Marmot은 질병의 원인을 사회적 환경에서 찾으며 '질병의 사회적 결정 (social determinants of health)'를 주장합니다. 가난하고 지위가 약한 계층에서 질병발생률이 훨씬 높은데, 특히 이를 인체의 스트레스반응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스트레스와 마주칠 가능성이 훨씬 높으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해결을 돕는 사회적 지지 (social support)의 자원이 훨씬 약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또한, 건강불평등의 문제는 절대빈곤층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빈부격차 등 '상대적 빈곤'이 더욱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인류학자 Dressler는 문화적 요인이 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면서 사회의 주류문화에 편입되지 못하면서 겪는 문화적 괴리가 스트레스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스트레스와 난임의 문제를 살필 때 간과해서는 안되는 문제가 과연 이 스트레스의 근원은 무엇일까에 대한 물음입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경쟁, 상대적 빈곤, 과다한 노동량과 열악한 근무환경, 유교적 가치관과 근대적 사회의 충돌... 이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해결없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라는 처방이 과연 유효할수 있을지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